조문弔問

by 백승권

주말 오전, 도로시와 놀고 있었다. 휴대폰 메시지가 왔다. 부고였다. 지인의 가족 중 한 분. 아내에게 알리고 준비했다. 검은 옷을 챙겼다. 고속도로가 정체될 것 같아 버스를 탔다. 택시를 한번 더 탔다. 건물로 들어섰다. 1층 입구에서 체온과 QR코드 체크를 하고 이름을 기입했다. 지인의 이름을 확인했다. 계단을 올랐다. 방명록을 적고 조의금을 넣었다. 신을 벗었다. 여기까지가 제정신이었다.

영정 앞에서 예를 갖췄다. 지인이 다가와 안내했다. 그는 초췌했다. 처음 몇 초는 못 알아봤다. 지인의 다른 가족분께 인사드렸다. 우리는 앉았고 그는 음식을 건넸다. 여러 번 거절하기 어려웠다. 받았고 먹지 못했다. 입을 떼기 어려웠다. 한치의 위로도 허영처럼 전해질 것 같았다. 낮은 목소리로 떠나신 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등과 어깨를 조심히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그는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자였다. 어떤 언어도 이 간극을 좁힐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 속에 (실제 하고 진행 중이며 오랫동안 끝나지 않을) 슬픔과 고통이 겹겹이 엉켜있었다. 그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곳에 이르기 전에도 그랬고 이곳에서 나간 후에도 그럴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 그려낼 수 없는 시간을 겪은 자였다. 그의 남은 생에 영영 영향을 미칠 일을 관통하는 중이었다. 그의 보이지 않는 부분의 많은 면이 이 일을 지나며 부서져 있었다. 떠나신 분의 말과 이미지들이 그의 음성과 주변의 낮은 공기 사이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는 상주였고 한 곳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 점점 조문객들이 공간의 이곳저곳을 채웠다. 그는 오가며 그들을 맞이했다. 창밖의 볕은 별이 되어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차와 어둠으로 분주했다. 택시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오래 걷다가 탔고 버스 환승지에 다다랐다. 귀가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그의 말들을 떠올렸다. 그의 말들은 자욱했고 내게로 옮겨온 후에도 오래 머물렀다. 어느 천주교 사제가 그에게 들려줬다는 '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른거렸다. 떠난 분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에는 신이 관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의 존재도 믿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 형언하기 힘든 현재의 슬픔과 고통이 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 분과의 재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서 신의 존재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는 말. 이 혼란 속에서 떠난 분은 신과 지인을 잇고 있었다. 신을 잊으면 떠난 분과도 조금이라도 멀어질까 봐 그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로 스스로의 내면과 합의한 듯 보였다. 언젠가 나와 우리에게도 닥칠 일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