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포플웰 감독. 아메리칸 머더: 이웃집 살인 사건
살인은 늘 주목받는 콘텐츠 소재였다. 신에게 더 사랑받고 싶었던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다는 신화 속 이야기를 '인류 최초의 살인'이라고 부제를 달아줄 정도로 사람들은 살인 이야기에 열광했다. 고대부터 처형방식이 다양한 건 죄의 엄중함을 묻기 위함보다 권력자와 백성들의 보다 자극적인 볼거리를 위함이기도 했다. 매달고 자르고 쏘고 짓누르고 해체하고... 사람들은 더 더 끔찍한 형태의 살인을 원했다. 죽음보다 못한 현실에서 못 다 이루는 판타지에 대한 갈증인지, 무료한 일상의 도피처인지. 심리와 흥미에 편승한 미디어의 부채질인지. 모두 다 인지, 모두 다 공범은 아닌지.
오프라인은 소원해지고 온라인은 긴밀해지는 관계도의 진화, 공중을 향해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노출 빈도, 만인에게 털어놓는 인생 이야기,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캐릭터, SNS로 가볍게 시작된, 갑자기 빠져든 뜨거운 감정,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머더: 이웃집 살인 사건'은 죽은 자의 목소리와 죽은 자의 생전 영상으로 대부분의 분량을 채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큐멘터리는 살해당한 희생자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페이스북 사진, 영상, 가족의 세세한 일상, 감정과 서사가 진하게 담긴 내레이션, 아이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처참하게 희생된 아이들의 환하게 웃고 뛰어노는 모습까지, 범죄의 참상과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빠를 닮은 얼굴, 얼굴들, 그리고 뱃속의 아기까지.
가족 살인이라는 소재의 끔찍함 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미국 가정에서 일어난 범죄를 다루는 방식이 더 궁금했다. 사례를 굳이 들지 않아도 범행 방식과 동기는 결과의 끔찍함보다 우선시 될 수 없으니까. 분류하자면, 미드와 영화가 무수히 생산해온 살인 콘텐츠의 또 다른 버전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철저히 극 영화의 방식과 구성을 따른다. 긴장을 내려놓게 하는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 실종, 의혹, 증언들, 생전의 기록, 지인과 나눈 문자메시지, 계속 비집고 노출되는 SNS 영상들, SNS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관계의 그림자들, 비밀스러운 관계, 좁혀지는 수사망, 핵심 용의자, 가해자를 옹호하고 희생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들, 실토, 진실, 발견된 시신, 방식의 참혹함, 재판, 판결, 클로즈업된 범인의 얼굴, 다리를 흔드는 모습, 추모... 이제 어떤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텅 빈 집.
살인 사건 앞에 최대 최악이라는 수식어는 조회수 증가와 바이럴 확산을 위한 마케팅이다. 이미 일어난 살인 사건은 미제를 제외하더라도 너무 많고 여전히 살인자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무대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살인에 의한 여성 희생 빈도 현황에 대한 통계를 달아두긴 했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자극과 논란 극대화를 위한 희생자 전시 외에 다른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이게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다큐멘터리 연출 방식일 수도 있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SNS에 행복한 가족의 사진과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살인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시청 후, 가장 사랑하는 어른에게 목숨을 빼앗긴 아이들의 모습이 내내 떠올라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