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Feb 22. 2021

블랙 미러, 연애의 미래

팀 밴패튼 감독. 블랙 미러 시즌4: 시스템의 연인

Georgina Campbell / CROOKES Magazine




연애가 끝나지 않는 시대. 시스템이 모든 연애를 관리한다. 자동 매칭 시키고 연애기간을 설정해준다. 기간은 수시간부터 수년까지 다양한다. 식사와 수면을 위한 장소와 이동차량이 제공된다. 단말기로 남은 연애 기간 확인과 AI 고객 상담이 가능하다. 수많은 매칭을 통해 평생 커플에 선정된 이들은 홍보에 활용된다. 한번 시작하면 최종 커플이 될 때까지 연애 매칭이 끝나지 않는다. 만나고 헤어지고 일정 기간 후 다른 매칭이 잡힌다. 모든 과정과 스케줄링은 시스템이 컨트롤한다. 마치 시스템이 설정한 실험실에서 수많은 개체의 실험쥐들이 죽을 때까지 짝짓기를 강요당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자유의지가 사라진 연애랄까. 


애초 연애는 집단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장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만남에 필요한 수많은 조건들, 자신과 상대의 감정을 변화시키기 위해 수반되는 수많은 시도들, 장소, 공간, 식사, 유흥, 패션, 스타일, 이동 수단, 모임, 선물 등, 거의 모든 것들에 비용이 수반된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인간의 연애란 소비와 지출로 가득한 게다가 수요가 끊이지 않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이걸 하나의 시스템이 컨트롤한다면? 모든 이익을 관리할 수 있다. 개인의 인생, 사생활, 감정, 고민이 기업에게 수익이 된다. 인간은 상황에 넣어주면 알아서 고민에 빠지고 헤어 나오지 못하니까. 시스템은 친절한 감옥이 되어준다. 보이지 않는 창살, 보이지 않는 간수, 보이지 않는 하지만 어느 것 하나 개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강압적 관리. 시스템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의 변화에 전부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무시한다. 시스템은 모르는 게 많다. 그저 해당 커플의 남은 시간만 알려줄 뿐이다. 1분 남았습니다. 또는 1년 남았습니다. 


한 커플은 나름 스스로가 대담하고 참신하다고 여겨지는 시도를 한다. 커플 시작 타이밍을 정하지 않고 남은 시간을 궁금해하거나 확인하지 않는 것. 둘은 자신이 상대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우리의 사랑은 강제로 붙였다 뗄 수 없다고 여긴다. 둘은 시스템의 통제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도망간다. 어떤 불이익을 얻을지 언정 서로 헤어지지 않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다. 지금 사회로부터 탈주를 시도한다. 시스템 관점에선 시스템 오류이자 버그였다. 둘은 마치 혁명가처럼 높은 담을 올라 도망을 시도한다. 벗어나면 목적에 도달할까. 둘만의 세상에서 진정한 사랑에 휩싸이며 자유로움을 누릴까. 목적의 배경은 무엇일까. 원하지 않는 릴레이 연애에 지쳐 나를 진정 이해하는 파트너에 안착하고 싶어 진 걸까. 연애를 원하는 감정과 연애를 실현시켜주는 시스템이 만나 자동 매칭 시스템을 탄생시켰는데, 이제 사용자의 거부로 연애 강요 시대는 이대로 끝을 맺게 되는 걸까. 순수하고 진정 진정 진정한 사랑만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과거의 시간대로 회귀하는 걸까. 이건 혁명일까. 시스템의 파괴, 인간 중심 연애 시대의 도래? 


인간이 한 치 앞도 몰라 삽질을 멈추지 못할 때조차 시스템은 누적된 데이터를 통해 변수를 파악하고 대응을 마련한다. 인간이 모를 때 시스템은 안다고 판단한다. 사용자의 컨디션에 상관없이 실행을 (강하게) 요구한다. 인구 감소 문제의 시스템적 해결책인가. 인간의 외로움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져서 고안한 대안인가. 세상 모두를 연인으로 만들자? 블랙 미러에 희망 제시는 없다. 혁명을 시도한 커플은 다른 시스템에 편입된다. 현재의 감옥을 탈출한 순간, 새로운 담장이 주변을 둘러싼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 미러-시스템의 연인 편은 HBO 웨스트 월드의 프리퀄 에피소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 감정에 있어서, 이들 SF가 그리는 진정성은 학습된 또는 주입된 개념에 가깝다. 사랑에 그런 게 있다고 믿게 하면 자신과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여길 테니. 미래는 비웃고 현재의 인간들에겐 다른 수가 없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이전 13화 소년시절의 너, 어둠 그 별빛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