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로 출퇴근하기

by 백승권

"힘들다..."


SRT로 출퇴근하기 라는 글을 써볼까, 첫 문장은 (힘들다) 이걸로 할까. 떠올리며 열차에서 내렸다. 힘듦에 대한 지리멸렬한 공감대 형성이고 뭐고 내릴 때마다 (힘들다) 떠올랐다. 내리기 전부터 (힘들다) 떠올랐다. 다음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수서역이라고 안내방송이 나오기 전부터, (힘들다) 일본어 안내 문구가 쓰여 있는 객실 입구 상단 모니터에 유재석과 놀면 뭐하니 화면이 나오기 전부터, (힘들다) 어둠의 터널을 내시경 렌즈처럼 돌파하는 흔들리는 객차 안 통로에서 짐을 올리는 선반을 한 손으로 잡고 입석으로 오기 전부터 (힘들다) 이 열차에 타려고 줄 서기 전부터 (힘들다) 줄 서려고 길고 긴 지하 5층 연옥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하염없이 내려올 때부터 (힘들다) 박효신의 애절한 야생화를 그만 들을 때부터 (힘들다) 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힘들다) 역에서 내리려고 버스를 탈 때부터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릴 때부터 (힘들다) 광역버스 시내버스 픽업 승용차들이 용광로 부대찌개처럼 자리 못 잡고 들끓는 난장 속에서 목숨 걸고 1차선에서 손 흔들며 앞 버스와 뒷 버스 사이를 뚫고 지나가 2차선에 잠시 멈추고 문 열린 H12버스에 오르기 전부터 (힘들다) 담배연기가 서린 새벽 공기를 뚫고 정류장으로 향할 때부터 (힘들다) 멀리 헤드라이트가 움직이지 않는 건널목 빨간불을 건널 때부터 (힘들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전부터 (힘들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부터 (힘들다) 나이키 플라이이즈를 신기 전부터 (힘들다) 구겨진 구찌 수프림 크로스백을 한쪽 어깨에 걸치기 전부터 (힘들다) 왁스로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전부터 (힘들다) 양말을 신고 바지를 입고 검정 캐시미어 니트에 얼굴을 넣을 때부터 (힘들다) 젖은 머리를 말리기 전부터 (힘들다) 스킨로션 선블록 크림을 바르기 전부터 (힘들다) 뺨과 눈썹에 물이 닿기 전부터 (힘들다) 불 꺼진 거실을 지나 욕실 거울 앞으로 살금살금 걸어가기 전부터 (힘들다) 이불을 걷고 스으윽 침실을 벗어나기 전부터 (힘들다) 6:00 AM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힘들다) 도로시 악몽이 걱정되기 전부터. 뒤척이기 전부터. 하품을 했어. 힘들어서. 지금은 메모장(아이폰)에 이 글을 적다 잠이 좀 깼고 서울숲역(지하철)에서 내려 2번 출구로 걸어간다. 안경에 김이 서리고 찬 기운이 수족냉증을 소환시킨다. 그래서 여기까지.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를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