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티 모리스 감독.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
한 여성의 신용 카드로
두 번째 여성의 비행기표와
세 번째 여성의 저녁을 사니까
이제 보니 제 돈으로 개수작을 부렸더군요.
사이먼은 석방 이후 틴더로 복귀했다.
타인이 뜬 눈으로 지옥에 빠지는 풍경. 멀리서 보는 건 편하다. 지난 후에 듣는 건 쉽다. 판단은 갈린다. 공감은 한다지만... 아니 저걸 당했다고? 저렇게? 이럴 수 있다. 틴더로 연결된 사람이 명품과 매너로 휘감은 채 나타나 재벌가 2세로 신분을 밝힌 후 롤스로이스를 보내고 전세기 태우고 5성급 호텔에서 먹고 자고 거액을 이체해주는데 그걸 그대로 믿고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 자기 인생을 몽땅 이체해줬다고? 내가 위험하니 어서 자기 돈으로 날 구해줘. 이런 말에 흔들려서 여러 군데서 대출을 받아서 돈을 주고 신용을 주고 미래를 주고 또 주고 다 주고 더 주고 돌려받지 못했다고?
틴더에서 만난 상대와 빠르고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후 거액을 요구하고 협박한 남자의 이야기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가 처음이 아니다. 흥미로운 건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질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자만의 확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페이크 다큐나 픽션에서 익숙했던 적절한 음악 삽입과 장면 편집을 통해 극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감정과 시간, 거액을 피해본 피해자는 이미 언론과의 공조를 통해 범인의 만행을 공개하고 행적을 쫓으며 (불가피하게) 얼굴이 알려져 있었고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굳이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게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자신이 겪은 피해의 여정을 드러내며 스스로 화제의 중심에 오르고 주목받는 점을 즐기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살기 위해 피해액을 되찾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사기꾼은 남의 돈이 자기 돈이고 자기 돈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여생을 약속하거나 헌신하는 '척하며' 결국엔 돈을 갈취하는 자였다.
피해자는 믿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사기 피해자라는 점보다 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는 점에, 나와 그의 애정 어린 대화와 감정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점에 더 울분을 토했다. 설마 그럴 리 없을 거라고 끝까지 부정하고 싶어 했다. 비슷한 경우를 현실에서도 많이 봤다. 정황상 분명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게 확실했는데도 가해자도 아마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거나 진심으로 선택한 일이 아닐 거라고 피해 당사자는 부정하고 있었다. 틴더 사기꾼의 피해자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할 정도로 피해금액이 큰 게 진실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살갗에 닿는 진실. 범인은 잡히고 감옥에 다녀오지만 여전히 틴더에서 활동한다. 피해자들의 피해금액은 구제받지 못한 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가시적 검증을 거치지 않고 막연한 희망를 바탕으로 관계를 잇는 특정 플랫폼 안에서, 매칭을 원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결국 오랜 역사를 지닌 기존 사기 방식이 영역을 옮긴 버전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본성을 노리며 긴 시간 계획하고 숙련된 방식으로 상대방을 농락하기에 쉽게 간파될 수 없다. 사랑의 불완전성을 인지하고 그 불완전성 안에서 불꽃처럼 도출되는 결과가 얼마나 놀라운지 경험한 적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긍정 회로를 돌리며 망설이다가 때를 놓치게 된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꿀 기회를. 잔고는 비었어도 감정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다시 로그인하게 된다. 다시 일면식 없는 타인의 사진을 넘기게 된다. 무명의 타인들 중 누군가 다시 가짜 이름과 가짜 신분을 쓰고 가짜 사랑을 속삭이며 접근하면 다시 속을 지도 모른다. 틴더는 속이는 자와 속을 준비가 된 자들로 들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