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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Feb 23. 2023

뉴욕타임스 다이어리: 아이들은 모든 곳에 있다



생의 오랜 기간 아이들은 타인이었다. 시끄럽게 귀찮고 통제 안되고 작고 까다로운. 이런 타인들에게 익숙해지는 법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들도 매번 난감해하며 어쩔 줄 모르고 비겁하게 회피하던 풍경도 많이 마주했었다. 귀엽긴 하지. 귀여운데... 그때뿐이었다. 어른들의 고요하고 아늑한 일상을 침범하면 그때부터는 적과 다름없었다. 피리 부는 청년자원봉사단이 출동해서 모조리 몰고 사라졌으면 할 때도 많았다. 도로시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도로시가 나와 우리의 삶 자체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 나와 우리의 절대적인 일부는 도로시가 되었다. 육체와 정신, 시간과 공간, 차원과 사고, 세계관 모두 도로시 도로시 도로시로 물들었다. 숨결 하나 발걸음 하나 속삭임 하나하나하나가 모조리 도로시의 영역 안에서 이뤄졌다. 그 결과 관점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더 이상 과거의 타인이 아니었다. 그럴 수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누군가의 도로시였으니까. 어디선가 도로시처럼 행동하고 어디선가 도로시처럼 사랑받을 타인들이었다. 이전과 똑같이 대할 수 없다. 불가능했다. 내가 바뀌었으니까. 도로시에게 맞춰진 나로. 처절하게 학습되었으니까. 적응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벌떡 일어나 자리를 내어주고 보호자에게서 조금 떨어진 아이들은 다칠까 봐 시선을 두고 지켜보게 되며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마주치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방긋 웃어준다. 뉴욕타임스의 사진들 속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다치고 아파서 누워 있거나 황폐한 전장에서 울부짖고 있거나 사람들 손에 의해 옮겨지고 있다. 나는 도로시를 통해 아이가 아플 때 보호자가 어떤 심정인지 (내가 느낀 만큼만) 알고 있다. 왜 수많은 영화 속에서 어느 부모가 자신의 아이 하나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세계와 인류의 운명을 모조리 희생시키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세계 곳곳 척박하고 지옥보다 못할 게 없는 현실 상황에 놓인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 정신이 부서진다.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환경과 주변이 파괴되는 아수라를 겪어야 하는 그들의 현실에 절망을 느낀다. 이후 개인으로서 받을 영원한 영향과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괴로움을 예상하는 일은 안타깝고 절절하다. 남은 오랜 기간 더 이상 아이들은 타인일 수 없다. 도로시를 통해 얻은 소중한 배움이고 더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한 긴 미션이다. 아이들에게 닥친 문제들은 무명의 어른의 한숨과 낙담만으로는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 현실과 사진, 아이들은 모든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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