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와 무지

by Glenn



시선이 잘 닿지 않는 책장 위를 후 하고 부는 순간 쌓여 있던 먼지들이 화르르 퍼지며 실내 공기를 어지럽힌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먼지 분말들이 흩어진다. 나부낀다. 사라지거나 어디론가 내려간다. 내려가고 내려가다가 착지할 것이다. 어디로. 그건 모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너무 가볍고 너무 힘이 없어서 심지어 스스로 어떻게 하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아무도 관심이 있을 리 없지. 이름이 없고 형체가 없으며 비중이 없고 알려지지 않아서. 주변의 사물들이 조금만 움직여도 대기가 휘몰아치며 먼지는 엄청난 풍파를 느끼며 흩날린다. 느끼긴 뭘 느껴. 어디로 갈지 모른다. 언제 착지하고 언제까지 나부끼고 언제 사라질지 시점과 좌표를 모른다. 모른다가 전부다. 무지의 형상화. 한없이 올라가거나 사뿐히 내려앉을지도 모르지만 모른다. 자욱하게 뭉쳐 있다가 산산이 확산될지도 모르지만 모른다. 해파리는 대부분이 수분이라는데 해파리는 자기가 수중에서 어디로 휘적이며 나아가는지 인지할까. 자기가 그물에 걸려 해파리냉채가 될지 대왕 문어의 여덟 개 다리 중 하나에 어쩌다 휘감길지 알까. 모르지 돌고래도 아닌데. 먼지도 그럴 것이다. 먼지는 이따금 빈 창을 뚫고 거실의 모든 면을 가득 채우는 햇볕의 정면을 바라봤을 때 간혹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햇볕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어디로 내려앉을지 본인도 모른다. 수분감이 있더라도 햇볕에 타올라 소멸되지도 못한다. 수백만 배율의 성능 좋은 렌즈를 들이댄다면 기괴하거나 오묘하거나 마구 엉켜있거나 현란한 무늬를 들킬지도 모르지. 하지만 24시간 렌즈를 들고 바라볼 수는 없다. 연구실 현미경 아래로 잡혀가지 않는 이상 먼지의 운명은 먼지처럼 왔다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고 중간과 과정이 어지러우며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고 돌보는 대상이 없으며 그렇다고 큰 먼지가 작은 먼지를 돌볼 일도 없고 그저 내내 부유하다가 내내 휘말리다가 내내 온도 습도 대기의 흐름에 영향만 받다가 영향만 받다가 영향만 받다가 영향만 받게 된다. 자의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있다고 해도 발견되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누구도 발견할리 없다. 실체보다는 개념에 가깝다. 먼지라는 2음절만 들어도 호흡기를 틀어막고 자리를 비우고 손을 휘적거리며 회피한다. 감각과 신경, 정신과 영혼, 근육과 피와 뼈, 어느 것도 갖춰지지 않는다. 그렇게 전해진다. 지구 중심 깊은 곳에서부터 중력이 끌어당기고 있다니까 마구 떠올라도 계속 내려앉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딘지 몰라. 안다 한들 어떻게 내려갈지 몰라. 내려간다고 해도 언제 다시 떠오를지 몰라. 모르는 것뿐이다. 먼지는 모르고 나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 먼지를 나로 바꿔도 괜찮을지. 그게 뭐가 다를지. 어디에 쌓일지. 어떤 먼지와 뒤섞일지. 의미를 맹신할지. 먼지는 모른다. 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