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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y 03. 2024

패스트 라이브즈, 12+12=0

셀린 송 감독. 패스트 라이브즈

소년소녀 노라와 해성은 헤어진다. 12년 후 영상 통화로 다시 이어진다. 다시 헤어진다. 노벨문학상을 꿈꾸던 노라는 뉴욕에서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다. 영화감독 아빠와 화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체에게 충분히 어울릴만한 비전이었다. 작가 커리어에 몰두하려는데 갑자기 자기를 찾는 해성은 장애물이었다. 자꾸 해성에게 가고 싶었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었다. 해성은 과거의 조각이었고 뭉클한 기억이었으며 일종의 안전한 보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로서 노라를 미래의 퓰리처상 수상자 명단에서 지울지도 모르는 침입자였다. 헤어짐을 선언하기에는 그럴듯한 이유였다. 그리고 12년 후 노라(그레타 리)와 해성(유태오)은 다시 만난다. 전생에 8천 겹의 인연 어쩌고... 이러면서.


12+12년 만에 만난 노라와 해성. 노라는 남편이 있었고 해성은 여자친구가 있었다. 할리우드 로맨틱 스토리의 익숙한 패턴이었다면 둘은 만나자마자 화염에 불타오르며 시공간이 낮의 공원에서 밤의 호텔로 뒤바뀌고 서로를 벽과 바닥으로 마구 밀치며 격정적이고도 가슴 아린 표정과 액션으로 엉키다가 새벽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각자 현재의 옆사람은 아쉬운 점이 많고 (그들이 각각 원고를 훔치거나 사기 행각을 벌인 빌런이면 더할 나위 없다) 알고 보니 우린 서로에게 운명 운명 운명의 러브러브라서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이제서라도 우주 최고의 커플이 되자...라고 맹세했을지도 모른다. 작가인 노라라면 아마도 이 정도 스토리까지는 구상했을지도 모른다. 남편 아서(존 마가로)도 마침 백인 악당을 알아서 자처했으니 죄책감도 내려갈 테니. 하지만 노라와 해성은 이런 에너지를 서로에게 발산하지 않는다.


애틋함은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다가가지 않는 건 더 다가갈 수 없는 이유들(도덕, 윤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다가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사랑, 관계, 인연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찰나의 호감과 가능성에 그친 사이이기 때문이다. 모든 조건이 완전히 마련되어 있었다면 둘은 다시 12+12년을 거슬러 합체한 운명의 커플이 되었을까. 평행우주에서는 가능했을까. 그렇게 쉽고 자연스러운 게 사랑이고 운명이었다면 오늘날 인류가 헤어짐을 대하는 태도는 훨씬 더 안일했을 것이다. 전생에 8천 겹의 인연을 쌓아 올린 운명이자 12+12년을 거슬러 올라와 마침내 마주한 사랑이라면 같이 사는 남편이 7명이 있고 한국에 부인과 자식이 12명이 기다린들 왜 머뭇거릴까. 이런 건 흔들림이자 간헐적 충동이지 여생을 약속할 사랑이 아니다. 둘은 그저 이런 식으로 서로 인생의 한 챕터가 되기로 한 것이다. 둘은 그렇게 결정했다.


상대에 대한 탐욕과 집착만이 운명적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둘은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둘의 어떤 외부적 상황도 이토록 어렵게 만난 둘을 떼어낼 정도로 가혹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둘이 돌아선 건 공항 가는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린 건 둘이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중력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자신의 주변에 나열된 상황들을 모두 뒤바꿀 만큼 서로를 향한 감정이 결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운명적 사랑인지 모르겠다. 전생에 이미 정해진, 헤어질 운명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어눌한 한국말 대화로 전할 수 있는 이번 생의 마지막 인사는 우린 여기까지였다.


남편까지 데려온 술집에서 (등을 돌린 채) 다른 남자만 빤히 보면서 사랑의 고백을 나누는 장면은 기이하다. 남편의 존재를 그렇게까지 납작하게 만들면서까지 서로에게 몰입한들 상대적으로 둘에게 더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지 않는다. 더구나 아서를 동양인 이민자를 결혼 제도를 통해 정착시키는데 기여한(그렇게 자각하고 있는) 선량한 백인 남성 캐릭터로 그리는 방식은 (실제 이민자 2세들의 상황이 그렇다한들) 극 중 노라의 선택에 더 깊은 공감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관계가 타인의 이해를 기반으로 진행될까. 해성은 떠나고 남은 노라는 오열하며 아서는 첫사랑과 너무 늦게 헤어진 아내를 위로한다. 노라가 아서의 첫사랑이었다면 어땠을까. 해성의 여자친구와 노라가 마주치면 어땠을까. 아니 술집에 둘만 남은 해성과 아서가 입을 맞췄다면 어땠을까. 아니 이번 영화가 해성과 아서의 전생이고 후속작 브로크백마운틴 인 뉴욕(가제)을 위한 빌드업이라면 어땠을까. 현생이 초라할수록 전생을 향한 열망과 가정은 비대해진다. 노라와 해성은 가능성만 측정했던 관계라서 여생의 환상은 화상처럼 아릴 것이다. 하지만 내색할 수 없지. 얌전히 소주 마시던 장기하의 노래처럼. 별일 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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