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 유포리아 시즌 1, 2 & 스페셜 파트 1, 2
세상에서 너 빼고 나머지는 다 싫어
생각이나 숨을 멈추지 않는 이상
이 증상은 계속됐어
자기 뇌와 몸을 혐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머지도 싫어져
여생을 그 친구랑 보내는 상상을 했어
내 세상이 너무 좁아졌어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에
너랑 수다 떤 것도 포함돼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넌 꿈같은 애야
사랑보다 큰 감정이 있어?
상실감
약은 2만에 팔면 수익은 7천이야
아편제를 많이 한 사람들의 뇌를 연구했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뇌 속의 화학 물질이 줄어든대
인위적으로 행복을 느끼니까
뇌가 기능을 멈추는 거지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부위에
괴사가 생겨 버리는 거야
나 같은 건 없어지는 편이
낫다고들 생각하겠지
나도 동의하는 바야
마약에 절여 있던 내가 준 상처는
누구도 잊지 못해
약을 끊어야겠단 생각 자체를 안 했거든요
내 유일한 희망은 저항이야
얘야, 문제는 평생 가지 않는단다
결국 용서가 변화의 열쇠란 것도
깨닫지 못할 거야
우린 마치 인간 내면을 꿰뚫는
통찰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남의 의도나 동기를 평가하고 다니잖아
'이런 짓을 했으니까 넌 이런 사람이야'
정말 말도 안 되지
용서받지 못할 짓을 계속하면서도
변해야 할 이유를 못 찾거든
바닥이라는 게 애초에 없는 사람도 종종 있거든
약은 인간으로서의 너를 완전히
바꿔 버린다는 거야
내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계속 노력하게 만든다
서로를 비인간적으로 만들려고
다들 혈안이 돼 있어요
될 수 없는 사람이 되려고
정말 열심히 애쓴 사람요
난 널 믿어
정말 보고 싶었어
10, 20, 30... 나이는 인간에 대한 큰 오해를 만든다. 통치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인식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문명은 인간에게 나이를 더할수록 더 나은 존재가 되길 강요한다. 더 나은 존재의 증명 방식은 결국 타인과 집단에 대한 기여도다. 경제적이든 정서적이든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배운다. 그렇게 먼저 배운 인간들은 늦게 태어난 인간들에게 똑같이 가르친다. 그렇다고 가르치는 그들은 더 나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배워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부작용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더 나은 인간처럼 스스로를 착각하는 부류가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나이를 무기 삼아 어린 자들에게 너희는 아직 더 나은 인간이 되려면 멀었다며 잘못된 방향으로 지시하고 훈계하며 엉망진창의 삶으로 유도한다. 그중 두 가지 예시가 마약과 섹스다. HBO 유포리아는 이 두 가지가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여기서 섹스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라고 갈아 끼워도 무방하다. 유포리아에서는 상관없다.
유포리아가 전시하는 핵심 인물들은 대부분 10대 후반과 부모 세대지만 다른 세대 역시 엉망인 건 마찬가지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노력이란 걸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자신과 자식, 타인과 환경 그 어느 것도 바꾸지 못한 채 최악의 최악으로 휩싸이고 빠져들며 파멸할 뿐이다. 10대 때 겪은 일들은 10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평생의 문제가 된다. 평생 끌어안고 살며 깨닫는 건 이건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100살을 더 먹는다고 해서 10대 때 겪은 상처들이 한 시절 옮겨 붙다 꺼진 들불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받고 의지하고 왜곡된 자신이 투영된 타인과 섹스하고 결핍 속에 허우적거리다 약물에 빠지고 찰나의 천국 속에서 희열감을 만끽하다가 뇌가 타버려 반복하고 반복하고 무슨 수가 있더라도 반복하게 된다. 모두를 망치는 것을 아는 것과 헤로인, 펜타닐, 옥시콘틴에 빠지는 건 다른 차원처럼 받아들인다. 남은 가족이 끊임없이 고통 속에서 울부짖어도 사실 상관없다. 나는 내 중독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도망치고 문을 두드리고 약을 사고 물건을 훔치면 된다. 준거집단 안에서 낙인찍히는 것? 아무것도 아니다. 풀린 눈으로 반짝거림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그만이다. 솔직히 절실히 죽고 싶다.
스스로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너무 힘들어진다. 그래서 더 스스로 죽고 싶어진다. 무책임한 부모들? 의지하게 만들고 먼저 죽기나 하고 결핍 투성이면서 훈계나 늘어놓고 아무리 희생해도 알바 아니다. 왜 하필 나의 부모가 되어서 내 삶을 침범하고 늘 망쳐놓기 바쁜가. 너희들이 책임을 다 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망했을까. 너희들이 책임을 다하는 척 교활하게 뒤에서 범죄를 저지르며 자식과 타인들의 인생을 모조리 버려놓았으니 너희의 고통은 너희가 자처한 것이다. 나의 고통은 너희가 사주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이제 와서 자식의 고통을 이해하고 감내하는 척하지 마. 너희의 흉측한 과거가 자식을 괴물로 만들고 너희의 지독한 범죄가 자식을 범죄자로 키운다. 자식 세대가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 아닌 부모의 가해로 대가를 치르는 삶.
사랑은 붕괴의 과정이다. 사랑, 연애 및 열애 감정이 약물보다 더 일상에 기여한 적은 없었다. 내가 약물을 멀리하지 않는 이상 약물은 날 배반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을 나눠준 인간은 어디 그런가. 인간은 배신한다. 인간의 사랑은 긍정과 희망을 기대하게 만든 후 잔혹하게 파괴한다. 인간의 애정에게 실망할수록 약물을 향한 의지는 높아진다. 약물 끊기보다 인간관계 끊기가 훨씬 수월하다. 상처받은 인간이 상처받은 인간을 사랑하고 상처받은 인간이 상처받은 인간을 다시 버린다. 인간은 얽힌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루(젠데이아)에게 약물은 자살의 대안이었다. 헤로인과 펜타닐을 경험한 이상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돌아오기 싫었다. 약물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적 없었다. 연애 감정이 강렬했을 때 흔들리기도 했다. 약물 중독 감정을 넘어서는 듯했다. 중독이 다른 중독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마약 대신 연애로 갈아탈 시도를 꿈꿀 수 있었다. 꿈만.
약물 중독을 이길 수 있는 꿈은 없었다. 약물에 중독되었을 때 어떤 꿈보다 화려한 꿈을 꿀 수 있었다. 이 꿈을 다시 꿀 수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파괴하는 건 너무 쉬웠다. 사랑하는 친구를 배신하는 건 너무 쉬웠다. 약물 중독이 모든 것을 너무 쉽게 만들었다. 쉽지 않은 것은 모두 고통이었다. 살아 숨 쉬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모두 고통이었다. 약물 중독은 이 모든 것을 뒤덮었다. 이 당장 뒤져버릴 것 같은 미친 삶을 초월하는 희열로 위로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줄 수 없는 위로였다. 이 위로를 위해서라면 돈을 훔치고 욕을 내뱉고 친구를 때리고 살해협박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를 위해 당장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 같이 울며불며 감싸주는 엄마를 배신하고 배신하고 배신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 약물을 빻아서 들이킬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았다. 거리에서 갑자기 토하고 경찰에게 쫓기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약물 중독은 꿈이었다. 어쩌면 죽음보다 강렬한 꿈,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깨어봤자 죽기 직전의 뒤틀린 고통으로만 가득한 어둡고 퀴퀴한 똑같은 일상뿐. 희망? 마약보다 큰 희망은 없었다. 유포리아의 루는 10대였다. 그가 더 나이를 먹는다고 세상이 나아질까. 그럴 리 없다. 20대 30대가 된다고 과거의 어둠에서 빠져나와 새 사람이 될까. 그럴 리 없다. 유포리아는 청춘의 낭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루는 마약 중독자로 죽을 것이다. 그전까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수많은 불가능들에 맞서 싸우겠지만 결국 마약 중독자로 죽을 것이다. 후회를 하든 참회를 하든 고해성사를 하든 재활치료 특강을 나가든 마약 중독자로 죽을 것이다. 루와 루의 삶은 전혀 남다르거나 특별하지 않다.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자연스러운 시뮬레이션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 나도 그렇겠지. 인정하기 싫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