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는 침묵을 견디는 법은
원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같이 침묵하는 게 아니고
원하지 않는 침묵을 아... 원래는 내가 이걸 원했구나 하고
원하지 않는 침묵에 대해 마음을 고쳐 먹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는 침묵의 원인을 다각도로 해석하는 게 아니고
원하지 않는 침묵이 나에 대한 부정적인 면에 의해 돌발된 거라고
원하지 않는 침묵을 굳이 자학과 자기혐오로 끌고 가는 게 아니고
원하지 않는 침묵을 견디는 법은
시간을 잊는 것입니다
......?
원하지 않는 침묵을 견디는 법이
시간을 잊는 거라고?
말이 되나. 시간을 어떻게 잊어
지금도 1분 1초마다 펑펑펑
터질 거 같이 미쳐버리겠는데
그렇죠
불가능하단 소리예요
원하지 않는 침묵을 견디는 법이 불가능하다면
이걸 처음부터 알고 있다고
원하지 않는 침묵을 잘 견딜 수 있는가 아니
불이 뜨겁다고 이미 알고 있다고
화상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고
피부 재생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아는 것과 직접 겪는 것 사이에는
완충장치가 없을 수도 있어요
다행히도
시간은 모든 시간 각인에 가깝게 적극적으로 감각하든
눈을 질끈 감고 잊으려 애쓰다가 결국 잊지 못하지만
어쩌다 잠시 다른 일에 신경 쓰다가 잊어버리게 되든
시간은 지나갑니다
시간은 자기만의 길로 알아서 가고 있어요
시간은 인류의 사고능력보다 앞서 존재했고
인간이 무엇을 마음먹고 준비하고 실행하든
인간의 하위개념으로 존재한 적 없어요
시간은 팽창과 분열이 자유로운
물질의 구성단위도 아니고
길들여서 말을 잘 듣게 만들 수 있는
펫의 속성과도 거리가 멀어요
시간은 시간의 세계를 살고 인간은
시간에게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고 애쓰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요
시간은 인간을 소유하며 가지고 놀지만
인간은 시간을 그렇게 다룰 수 없어요
결과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자들이 종종
시간이 돈보다 금보다 비싸니까 알아서 잘 사용하자...
같은 소릴하는데 사실 그들도 자신의 성공 이유를
합리적 논리적 이성적 설득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어서
사람들이 높은 가치를 부여했던 대상을 가져와
대강 둘러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시간은 그들이 편히 언급할 만큼 사소하지 않으니까요
시간은 자신을 설명하지 않고 소유된 적 없으며
존재 유무도 확실하지 않다. 그저 인간이 부여한
자연 현상과 세상의 작동방식을 나타내는
수많은 개념과 정의 중 하나면서도 다들 이걸
다루는 과정과 결과가 천차만별이고 우연과
변수에 따라 너무 많은 변동성을 지니고 있어서
결과를 누리는 자들은 있어도 시간에 대해
쉽고 안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은 드문 것이죠
동시대가 인정하는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르면
시간은 사실 어렵게 다루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여요
이미 혜택과 실리를 다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안과 조바심이 여전한 이유는
시간이 노화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인간을
서서히 불가항력적으로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상황과 조건, 능력과 노력 속에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고 시간의 양과 질을
확보했지만 시간은 여전히 인간을 죽음으로 다스려요
죽음을 쥐고 있는 이상 시간은 인간의 온갖
절대적 숭배 앞에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정보와 지식 공유를 통해
여러 계획을 진행시켜 먹이 사슬의 선점과
경쟁 생태계의 상위를 차지하려는 인간들은
시간을 자원화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집단 세뇌와 자기 세뇌 속에서 노화를 가속화하죠
이 사이에서 침묵은 여전히 회색지대입니다
특히 원하지 않는 침묵은 더더욱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영역이라는 거대한 공간
한 구석에 놓인 열리지 않는 방한칸 같은 이미지
어떤 소리 속에서 인간은 불편하고 이질적인
안정감을 느끼려는 심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 소리가 없는 상황에 오히려 더 많은 해석을
시끄러운 건 싫고 조용한 것도 싫어.
여기까지 사고가 다다르면 가만히 알게 되죠.
애초 침묵을 원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침묵의 유무에 대한 입장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침묵이 놓이는 곳, 침묵이 고이는 곳,
침묵이 부유하고 여기저기 감지되며
침묵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곳
침묵이 인지되는 곳, 결국
침묵의 형성을 최초 감지하고 체감하는
장소에 대한 의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교정되어야겠죠
원하지 않는 침묵을 견디는 법에서
원하지 않는 공간을 견디는 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