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불완전한 채로 시간이 흐르다
끝날 거라고 여기면 잠시 편할 수 있어
지금 상태를 긍정할 수 있지
괜찮은 거였구나 이 정도면
다들 이 정도 적당히 버티다가 대강 잊고 지우고
뭉개고 다른 일 닥치면 그 일 쳐내고
그 정도로 조금 비우고 덜컥거리고 냅두고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방치하기도 하고
어차피 뭐 한다고 뭐가 되는 게 아닐 수 있으니까
애쓴다고 결과가 막 화려해지고 그런 게 아닐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며
쓰다 보니 너무 하찮구나
이런 걸 쓰고 딛고 돋아난 마음을 잘라내려는 수작이
더럽고 찜찜하고 불쾌하기도 해
완전하지 못한 상태가 그런 게 아니라
그걸 그저 인정하려는 태도가 너무 끔찍하달까
복잡한 상황을 쉽게 정의하려는 시도는
많은 디테일을 희생하게 만들지
잘라내고 남은 부분들은 진실이 아냐
쓰레기장 한가운데 버려진 장미를 찍는다고
거기가 네덜란드 장미 농장이 되는 건 아니겠지
쉬운 인생
쉬운 사고
쉬운 결론
쉬운 합의
쉽게 넘어가는 건 말 그대로 쉽지
인식을 바꾼다고 대상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닐 텐데
피투성이 몸통을 흰 이불로 덮는다고
상처가 낫는 게 아니잖아요
영원히 고민해도 안 풀리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닫힌 상자의 열쇠를 가진 게 내가 아니라서
비밀 번호도 모르고 자물쇠도 안 보이고
열리지 않아서 내용물을 모르는 데
그게 나와 너무 밀접할 것 같은데
억지로 열 수도 없어서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다림과 긴 침묵을 쉽게 뒤집고 싶지 않아
이유를 노출할 수 없어
죽더라도 아무도 알 수 없겠지
비밀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아도
고민은 자신의 정체를 아직 몰라
지독하게 타자 지향적이고
모든 중력이 그쪽을 향해 있어
앞으로도 끌려가겠지
방향을 몰라도 앞이 안 보여도
낮이 밤이 되어도
폭염이 폭설이 되어도
모든 게 불완전한 채로 시간이 흐르다
끝날 거라고 여기면 잠시 편할 수 있어
하지만 편해지고 싶은 게 아니야
특정 상황 안에서 완전해지고 싶은 거지
침묵과 기다림이 잠시 멈추면 돼 아니
침묵과 기다림이 계속될 수도 있겠지
입술이 붙어 떨어지지 않고
눈꺼풀이 붙어 보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쓰려는 시도는 이미 소용없어요
이해하고 싶어서 쓰고 있게 된 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있지만
말하면 사라질까 봐 쓰지도 못하겠어요
(그동안 그토록 많은 말을 하고도)
또박또박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만둘 이유는 많은데 다 소용없어
너무 오래 길을 잃다 보니
원점이 지워지고 있어
흔적만 화인처럼 남아서
기억을 해석과 편집으로 뒤덮고
착각과 착시 속에서
울지 못해 웃고 있어요
울면 왜 우냐고 누가 물어볼까 봐
https://www.maisonmargiela.com/ko-kr/mm-artisanal-autumn-winter-20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