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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과 환각

by 백승권

인간은 왜 파멸하나요. 인간의 대표적인 자기모순은 무엇인가요. 결국 모두가 생물학적으로 죽는다면서.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건 어리석음이자 운명인가요. 너무 어리석군요. (그래서 더 인간답고) 어리석음은 인간을 파멸로 이끌지만 동시에 인간만의 존엄을 증명해요. 그런 어리석은 인간들끼리 계급을 나눈다는 게 웃겨요. 같은 무덤을 향해 가는 발걸음들이 서로의 그림자 길이를 재며 우월을 다투는 모습들.


요즘은 과녁에 맞지 않는 생각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것 같아요. 빗나간 생각들이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진실을 겨누고 있고. 진실과 마주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나. 진실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모두를 다치게 해요. 상처 입어야만 새로운 걸 획득할 수 있나요. 스스로 알을 깨는 자만이 새로운 세상을 직접 누릴 수 있다니.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는 자만이 미지의 빛 속에서 권리를 획득하다니. 지겨워요. 고통은 너무 많고 행복은 너무 찰나인데 수긍하고 인정하며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게. 고통이 더 많은 삶에 대체 어떤 가치가 있나요.


마치 섬광 같은, 찰나의 빛을 기억하는 순간을 가엾이 안고 나아가야 하나요. 실존의 어둠과 고통을 끌어안고 기억의 빛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나요.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너무 불량품 같아요. 너무 가혹해. 끝없는 고통의 반복으로 가득한 삶.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있는 걸 느끼면 뭐 하나요. 고통 천지인데. 노력에 비해 얻는 (그런 게 있다면) 행복이 너무 작은 것 같아요.


아이러니가 고민과 문제의 핵심이기도 해요. 초월하고 싶고. 인생과 일상의 모순을 좀 더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데. 방관자적 태도가 실제 문제 해결 상황에서 너무 비겁하게 여겨지고. 너덜너덜 정신과 육체로 균형이 가능할까. 버틸 수 없다면. 무너진 상황에서 새로운 시작의 길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삶을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하나. 깊고 복잡하게 파다 보면 나만 아는 듯한 온기와 밝기를 지닌 빛의 영역에 도달하기도 해요. 환상과 환각이더라도. 이제껏 모든 시도는 살고 싶은 발버둥 같아요. 이 글처럼. 의지 없이 혼자 이겨내야 타인을 도울 텐데. 지금이 빛의 한가운데였으면 좋겠어요. 너무 어두워요. 눈앞과 안도.


CELINE Fall, Part 2

A collection of signature daywear and curated accessories.

Captured by the Maison in April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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