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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같은 중간 결론

by 백승권

세상에 아직 다다르지 못한

너무 좋은 것들의 총합이 이뤄낸 세계는

제가 아직 닿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서

그런 삶을 이미 누렸거나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들끓는 질투에 앞서 묘한 표정으로

자문하게 됩니다


이상과 추상이 결합한

완전한 정점의 신세계가 있을까

저는 눈을 감고 천운만을 바라며

미지의 영역에 찌를 던지고 있었던 걸까요


그런 삶은 없겠지만

있다고 생각하면

내겐 왜 그런 삶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사실 나는

이미 수천억 번 그런 삶을 누렸고

이런 진실에도 불구하고

그런 삶을 감지하지 못한

참담한 저의 결여 때문에

내겐 왜 그런 삶이 없을까 라는

무지한 결론에 이르렀나 싶기도 해요


우린 그리고 저도

결국 1인의 삶이고

저와 다른 누군가는

저와 다른 삶을 누리고 있겠지만


간접으로 알게 된 어마어마한

타인의 삶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해석하며

너무 갖고 싶어 애닳아 하며

동경하는 걸 자제하게 되었어요


모두 지나가거나

결국 끝나거나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오고 가는데

일부를 확대하여 그 반대편의 나를

굳이 왜소하게 만들려는 행위가

오해에서 비롯되어 비극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너무 커서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여기며

각자 알아서 힘들면 그건 너무

엉망진창 같더라고요


서로가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대상을 향해

애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욕망을 품고

그걸 자기 것으로 가지지 못해 괴로워 하는

수요 없는 자학과 자멸의 풍경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상적인

내게 여전히 없는

이미지, 물질, 관계는 늘 존재하고


언젠가 우리의 숨이 멈추기 전에

그래도 우리에겐 이런 시절과 감정이 있었어

라고 혼자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겠죠

순정만화 같은 중간 결론이긴 하지만


그리고 난 이미 그런 웃음을

혼자 꺼내어 본 적이 많고


사물과 인간의 한계를 넘어

어떤 대상을 한없이 좋아하는지

한없이 좋아하는 자신을 좋아하는지

대상과 자신이 그걸 알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좋아하고

좋아하면서도 알고 있는지



The children of Olivetti employees in a company-sponsored kindergarten, Ivrea, Piedmont,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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