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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by 백승권

어떤 혼잣말은

옮겨 적으면 편지 아닌

일기 같아요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 지

오래되었고


눈물이 날 때마다 생각나는지

생각날 때마다 눈물이 나는지

더 이상 세지 않고


부끄러움을 잊은

삶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같은 시각, 맑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일을 더 좋아하기로 했어

혼자서는 그거밖에 할 수 없으니


말없이 가만히 있는 버릇은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소원이 이뤄진다는 설화를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으니까


지나친 절망도

가벼운 희망도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만족해야 하는 지금을 향해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최소한의 의심조차 거두는 일


소음은 많고

어떤 것은 죽어가고

누군가는 이미 사라졌고

그래서 누군 슬퍼하고

그걸 모두 알 수 없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서

놓치는 것들이 분명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

그때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런 핑계가 폭삭 주저앉은 폐허와

아직 식지 않은 잿더미 속에서도 허용이 되나


영영 괜찮을 수 없는 이유가

당신이 괜찮은지 아닌지 몰라서야

그걸 안다면 내가 괜찮은 게 완성이 되는데

그걸 모르고 모르는 게 채워지지 않으니

무지한 자는 영영 고통받는다


틀린 질문만 무수히 던지고

기다려도 올리 없는 답만 기다리다

삐걱거리는 의자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오겠지


죽은 자는 바라보지 못할

비참한 최후가 언젠가 급습할 테고


선명해지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생의 끝이 나를 원하며 잡아당길 날들이

어쩌면 가공할 속도로 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


생각이 쌓이면 현실의 동선을 바꾸겠지

바꾼 동선은 다시 생각을 바꾸고

서로를 교차하며 바꾸고 바꾸다가 끝에 이르고


어느 것도 닿지 않는 사이의 사이에 부유하며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지낼 수 있나


태어나게 한 자들에게는

원망할 의지가 없고

죽게 할 자들에겐 자객을 보낼

주소를 모르겠어


목소리가 작아서 닿지 않는 것 같아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나만 들려

내 음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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