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으러 가자

by Glenn

우리 숨어있자

그림자를 보여주지 말자

몇 년 골몰해 봤는데 가능할 거 같아

숨소리를 지우자

입을 입으로 덮고

등에 손바닥을 붙이고

가슴과 가슴이 닿을 때

옷깃이 바스락거리면

눈물로 적시면 조용해져요

귓가에 대고 예전 이야기를 느리게

같이 있었던 비밀을 소곤소곤

뒤통수를 어루만져, 목덜미도 같이

보고 싶었다고 말하자 깨끗한 떨림으로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을 선물로 사 왔어

볼이 빨개지는 웃음들

물기가 마르지 않는 눈가

얼마나 이런 순간을 기다렸는지

제대로 말하고 싶은데 목이 매여서

이대로 잠시 있자 어둠 속에서

어둠이 되어 어둠이 되어 어둠이 되어

너무 울어 검정잉크를 바닥에 쏟는 것 같아

부은 눈 더듬거려서 서로의 실루엣을 확인하자

입김의 온기와 중저음의 심장소리

갇힌 것 같아 서로의 안에서 안으로

우리 이대로 어디 가지 말고

숨어 있자 우리로 우리를 가려주자

영원을 약속하지 않아도 돼

희망을 맹세하지 않아도 돼

위로 같은 거 미래 같은 거

그만해도 돼

그냥 이렇게

지금 이대로

우리 숨자

세상 모든 숨이 멎을 때까지만

같이 있자

어디 가지 마

구해주세요

이대로 같이 잠들어

이대로 같이 눈을 뜨고

손을 잡고 걷자

교차하는 손가락의 살갗을 느끼며

남은 빛을 모두 들이마시며

끝으로 끝으로

우리가 우리를 오직

우리가 우리에게

팔을 뻗고 발이 닿고 숨이 멈추는

모든 끝이 우리인 곳으로

끝으로 가자

거기서 우리 숨어있자

모든 소란이 지나갈 때까지

모든 울음이 그칠 때까지

모든 연기가 사라질 때까지

그때까지 우리 살아있다면

죽어서라도 부둥켜안고

숨으러 가자

숨으러 가자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일어나

그림자 위에 눕지 말고


가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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