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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22. 2017

이충걸 에세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평생에 걸친 엄마와의 인터뷰,

 

소설가가 보는 가족에 대한 시선을 몇 번 접한 적 있다. 대표적으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 소설이라는 덩어리 안에 토막 난 생의 조각들 사이사이에 고이 깃들어 있었다. 아련하게 남는 이미지를 소환해보면 긍정은 많지 않았다. 희망이라 불리면 좋겠지만, 현재의 입장에서 희망은 오지 않을 미래 같이 보였으니까. 추억. 지나간 시간들을 뭉뚱그려 추억의 비빔밥으로 버무려놓고 있는 듯했다. 소설, 허구라는 합의가 전제되어 있었으니까. 허나 작가도 독자도 알 수 있었을 테다. 진실은 어디든 녹아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어디에 서식해 있든 누군가는 그 시절과 인물들을 겪어왔다는 점을. 지큐 코리아 편집장 이충걸의 문장은 이들과는 다른 질감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소설이 아니었으니까.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두 사실을 옮긴 기록이었다. 사실의 사건과 사실의 생각들. 주인공은 엄마였다. 엄마. 엄마.

 

책에 쓰인 엄마를 다시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의 주인공 엄마는 한 명이면서도 수백만 개의 묘사로 뒤덮여 있다. 얄팍한 비유를 빌린다면 MMORPG에서 다양한 전직이 가능함과 동시에 다양한 전투력과 스킬 등을 갖추고 있는 캐릭터와도 같아 보였다. 전지전능함을 내뿜는 호령과 핀잔을 쏘아붙이다가도 가랑잎 떨어지듯 독백하는 한없이 처연한 소녀가 되기도 했다. 엄마, 여자, 그리고 동거인, 인생의 어른, 그리고 평생의 동반자. 저자인 아들 앞에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아닌 아들의 여인으로서 맡겨졌다 스스로 여기는 임무를 무참히 수행한다. 세월이 허한, 그리움으로 드러나는 연대의식. 매일 같이 야근과 술 약속에 늦는 아들을 질타하다가도 바다 건너 대륙에서 전화할 때면 짙은 입김이 녹아든다. 아들이 엄마에게, 엄마가 아들에게 전하는 한마디. “보고 싶다.” 이 순간만큼은 특별한 모자는 없다고 증거 한다. 보통의 상황을 담은 특별한 기록과 기억만이 있을 뿐.

 

정리하면, ‘엄마는 어쩌면 만약에’는 엄마에 대한 가장 지큐적인 기록물이다. 세세한 서술과 면밀한 수사가 담긴 단편이면서도 동시에 두터운 장편의 테두리를 지니고 있고, 무엇보다 엄마와 아들, 단 두 명의 주인공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에피소드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보수적인 시대를 지나왔으면서도 누구보다 진보적인 어머니와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화의 편린들은 소소하고 정감 있으면서도 때로 단두대 같은 서슬 퍼런 날을 드러내기도 한다. 거기에 덧입혀지는 관계의 자욱한 먼지, 육체의 쇠약함으로 드러나는 시간의 슬픈 무게들. 화려한 화보와 지적인 크리틱으로 무장한 남성 매거진의 철 왕좌에 앉아 있는 ‘이충걸’이란 인물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관음에 대한 충족은 보너스다. 엄마에 대한 지금껏 어떤 기록들보다 신선하고 새로운 표현들. 동시에 모두의 엄마를 떠올릴 만큼 애잔하고 시린 침묵의 여백들. 책을 펼쳐 흔들면 쏟아질 것처럼, 행간과 자간 사이사이마다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이 그득하다.


어쩌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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