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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l 04. 2022

이충걸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2011년 4월 20일



소설을 쓰지 않는 경멸 대신
소설을 쓰는 경멸


화가에게는 색처럼, 수학자에게는 숫자처럼,
언어는 골칫거리이자 실재이며 어떤 에너지다.
모든 단어는 관심을 받아야 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소중히 다뤄져야 하지만, 그 각각은 질투심 많은 남편,
요구가 지나친 연인, 믿을 수 없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찾을 수 있는 최대치의 단어들로
언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감정을 사용하고 싶었다.


부와 명성을 거머쥔 사람들에게도 외로움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누가 나에게 세계 평화와 보테가 베네타    하나를 고르라면, 세상은  순간 멸망했을 것이다. 소설가 이충걸의 문장은 탐미와 세속, 교묘와 집요의 성찬이다. 도시 내부의 오장육부를 오가는 속물들의 표피를 응시하는 시선, 어둡고 찬란하고 관능적이고 심드렁하게 심연을 헤집는 표현들, 독자의 심박수를 요동치게 하며 군상들을 배우로 둔갑시키지만 카메라가 바깥으로 멀리 빠지는 순간 헛소동을 구경했다는 탄식에 이르게 한다. 랭보 같은 천재도  되고, 로리타 같은 도발적인 계집아이도 아니고,  이름으로 변변한 업적 하나 만들지도 못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요? 아빠랑 같이 사는 좀도둑 주제에. 주인공은 모든 상황을 감내한다. 경지에 닿은 듯한 초연함. 예상 못한 현실의 사건은 무아의 착각에 빠지게 한다. 꿈. 우리는 그녀의 현실을 남의 꿈 이야기처럼 경험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주위를 위로하는 그녀를 보며 이상한 공감대를 느낀다. 근데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니까,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보단 지금 서로에게 얼마만큼 중요하냐고 묻는   멋지지 않겠니? 완전히 불완전한. 제목은 모든 인물들에게 합당하게 부여된다. 완전한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불완전한 관계의 균열과 깨어질듯한 심리적 정서적 결여를 안고 사는 이들. 인물들은 가장 근시대에 존재하는 듯하다. 커피숍에서 휴게실에서 소수가 모인 공간에서 전해지고 있을 듯한 범인(凡人)들과 다른 그들의 이야기.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완벽해 보이는 사람을 가장 불완전해 보이게 만드는 비화를 알고 있다며 도시 전설을 하나 더 추가한다. 모두 예외가 없었다. 맞물린 관계들의 무한한 연속선 위에서 단지  순간만 사는 어린아이들. 우린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완전히 불완전한사람들이었다. 소설이 대화 소재가 될 수 있다면 완전히 불완전한은 목소리를 낮추며 전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은밀하고 가공할 사생활을 지닌 이들에 대해 크게 떠드는 건 초라한 전파자로서 스스로의 지위를 증명하는 일일 테니까. GQ편집장이 아닌 소설가로서의 그를 평가할 권한이 내게 부여된다면 다음 소설집을 채근할 것이다. 편집장의 데스크 대신 소설가의 서재를 지어줄 것이다.  


*붉은색은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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