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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29. 2018

박화영,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이환 감독. 박화영

박화영(김가희) 엄마라고 불리는  좋아한다. 버림받은 10대들의 10 엄마, 엄마와의 불화로 집을 나온 10대들이 박화영을 엄마라고 부르며 같이 지낸다. 먹고 자고 아무데서나 섹스한다. 소통은 없다. 뭔가 대화가 오고 가는  대략적인 소통의 정의라고 부를  있다면 박화영 주변에는 소통이 없다. 욕하고 때리고 욕하고 때리고 욕하고 때린다. 박화영은  사이에서 대신 욕먹고 대신 맞고 대신 욕먹고 대신 맞고 대신 욕먹고 대신 맞는다. 절대악처럼 그들의 세계 안에서 군림하는 어떤 미친 또라이   양아치 오빠 미친 새끼에게 맞고 욕먹고 맞고 욕먹고 맞고 욕먹고 싹싹 빌고  맞고 맞는다.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지나치게 폭력적인   그들의 현실일 것이다. 그들, 박화영과 박화영 주변의 아이들.


박화영이 엄마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는 이유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다. 박화영은 엄마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원하는 엄마가 없다. 침 뱉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욕하고 당장 돈 달라고 개지랄할 수 있는 대상인 성인 여자는 있지만, 그래서 경찰이 출동해도 딱히 조치할 수 없는 혈연관계의 여자가 있긴 하지만 박화영은 절대 그녀를 -년이라고 부를지언정-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되기로 한 것 같다. 박화영이 직접, 박화영이 원하는 엄마가 되기로 한다. 성격은 지랄 같아도 끼니 챙겨주고 최대한 보살펴주고 대신 맞고 대신 욕먹는 엄마. 한 또래 여자에게(친구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애정과 헌신을 퍼붓는다. 왜 저렇게 살까 싶겠지만 박화영은 저런 상황을 선택했다. 생물학적 엄마를 고를 수 없었지만, 대신 대안 엄마라도 자처하기로 했다. 박화영은 미친 듯이 맞아서 탱탱 부은 얼굴로 욕사발을 내뱉으며 시원하게 웃는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박화영 혼자 웃는다.


준거집단에서 소외받는 걸 끔찍하게 여기는 아이들. 박화영이 자식처럼 아끼고 챙기는 은미정(강민아) 역시 자기 대신 피떡이 된 '엄마' 박화영의 상태보다 애들 앞에서 '쪽팔린 게' 더 급했다. 두목 오빠(이재균)에게 돌아가고 싶어서 난리였고. 박화영은 씁쓸하게 웃는다. 자식 어쩌지 못하는 부모라도 된 건가. 교무실 안에서 담배 피우며 담임에게 쌍욕 퍼붓고 친엄마한테는 침 뱉으며 쌍욕 퍼부어도 자식 같이 여기는 은미정한테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박화영은 그렇게 엄마가 되지만 자신이 그러했듯 딸에게 사랑받는 엄마가 되지 못한다. 자신이 그러했듯 딸에게 버림받는 엄마로 쓸쓸하게 딸의 생에서 조연으로 생명이 역할이 사라질 뿐이었다. 기억되지 않는 희생, 기억되지 않는 배려, 기억되기를 거부하는 불편하고 끔찍한 시간들. 박화영은 끝까지 완전히 소모된다. 자신이 선택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자식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는다. 죄인이었다. 엄마라는 죄, 착각한 죄, 약자를 자처한 죄.


살인죄까지 뒤집어쓰고 박화영은 은미정의 삶에서 배제된다. 단절의 시간이 흐른 뒤 둘은 다시 만난다. 박화영은 여전히 박화영이었고 은미정은 데뷔한 아이돌이었다. 서로를 똑같은 양으로 사랑하지 않은 둘은 강렬하게 겹쳤던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지 않는다. 어색한 웃음과 술잔이 오가고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재회를 약속한다. 가까스로 남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된 은미정은 그제야 주인공처럼 보이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박화영은 돌아와 다시 엄마가 된다. 어쩌면 엄마를 경험하지 못해 엄마라는 캐릭터가 인생 최고의 이상적인 모델이 된 건 아니었을까. 엄마를 상상 속에서 계속 이미지화시키고, 스토리를 덧입혀서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도달하고 싶은 최고치의 지점을 엄마로 설정한 건 아니었을까. 박화영은 늘 떠들었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지금은 이렇게 기억된다. 박화영은 엄마가 없어서 이렇게 됐어. 내가 엄마 되어줄 테니 너희는 나처럼 박화영처럼 되지 마. 니들은 박화영이 되지 마. 내가 기꺼이 엄마가 되어 너희가 박화영이 되는 걸 막아볼게. 내가 조연이 되어 너희라도 너희 삶을 살 수 있도록 애써볼게. 야 진짜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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