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타인들은 얼마나 피곤할까
나는 결국 내가 된다.
내가 나를 관찰하는 동안에도
나는 나를 관찰하는 타인의
나를 관찰하고 동시에 타인의
나를 관찰하는 나를 관찰한다.
내가 나의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빠르게 타인의 귀를 빌려 온다.
잘 들어 봐, 내가 지금 어째서
나를 감당할 수 없었냐 하면...
그게 그러니까 나는 이런 데... 이런 걸 원하고...
알고 보니 나는 이래서...
이런 상황에도 나는 이럴 수밖에...
누구도 궁금하지 않은 나에 대해 발설한다.
나의 타인들은 얼마나 피곤할까.
그들의 시간은 얼마나 아까울까.
나는 숨을 쉬려고 타인의 입과 귀를 틀어막고
입을 열어 내 부패한 과거를 털어 넣는다.
나는 타인의 의견을 공격이라 생각하고
나의 의견을 석판의 십계명처럼 떠들며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발버둥 친다.
타인은 조금 가라앉고
나는 숨구멍을 밖으로 내민다.
나는 내게 너무 인정받고 싶어서
나는 나를 인정했던 과거를 부정할 수 없어서
현재에서도 이를 한없이 복제하려고
나는 괜찮고 나는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서
믿음을 강요하고 설득을 협박하고 싶어서
내가 기억하는 괜찮은 나를 향한 반응을 소환하며
현재에서 그대로 재현되길 기도한다.
기도는 응답이 없다.
기대는 엉망이 됐다.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허상을 만들어 주변 특정 장소에 배치하고
나를 위한 멘트를 입력시켜 리허설을 한 후
실제 그렇게 재생되지 않으면
큰 충격과 절망에 휩싸인다.
패턴. 타인의 인정과 칭찬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길들인 자는
자주 적당한 즐거움과
가끔 심각한 몰락을 경험한다.
합리화 시스템이 총동원되고 빠르게 작동되며
준비되지 않은 말과 늘 똑같은 리액션을 선보인다.
이것은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허상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