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타인에게 말할 때

by 백승권

어떤 대화는 거래다. 우연은 배제된다. 의도와 목적이 있고 적절한 반응이 전제되어야 한다. 쉼 없는 서로 간의 체크가 이뤄진다. 침묵의 공기 속에서 긴장이 감돈다. 이따금 아득해진다.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긴 대답을 하다가 자주 잊곤 한다. 답은 끝나지만 질문은 영영 기억나지 않는다. 부주의해 보일까 봐 되묻지도 않는다. 가까운 지인이라면 이럴 리 없다. 어떤 대화는 주로 낯선 자들과의 대화에 해당된다.


업무로 계약된 사람들이거나 사전에 약속한 사람들이거나 사회적 관계 안에서 대화는 엄정한 불문율 안에서 건조하게 오간다. 웃음기조차 연출된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소리 내어 웃으며 이뤄지는 대화는 억제된다. 힘드니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시간이 말과 글로 채워질 필요는 없어서 혼자 있다고 느껴지는 시간은 소중하다. 어쩔 땐 스스로에게조차 말을 아낀다. 무언의 대화. 무언의 납득. 침묵의 위로. 정지된 것들 사이에서 오는 비로소 기다리고 바라던 것들. 감정들. 온기들. 둘러싼 벽이 보이지 않아도 나만의 공간. 찬란한 외로움.


초면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가 있다. 그들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되고 싶었던 나와 될 수 없었던 나,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가 뒤섞이며 가장 안전하고도 효율적인 답을 찾는다. 간격이 길어질수록 감정이 들킬 수 있으니까. 이 자리가 서로 꽤나 어색한 건 사실이잖아요. 그렇죠?라고 먼저 말할 수는 없으니까. 잘 기억나지 않는 나와 좋은 것만 편집한 나를 잘 섞어 전달한다. 간혹 내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 입으로 튀어나오는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라고 새로운 형태의 자각이 이뤄지기도 한다.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정된 정보, 한정된 시간, 의무감, 책임감, 압박감, 공기 중의 입자로 퍼지는 나를 말하는 나의 말들이 어떤 이미지로 그들의 동공을 뚫고 뇌 속으로 들어가 인화될지 예측할 수 없다. 각자의 필터로 출력되고 평가되겠지. 어떤 대화는 서로 멀리 떨어진 타인들이 박수와 표정 없이 우두커니 바라만 보다 조용히 자리를 비우는 소극장 1인극 같다. 떨리는 주먹과 힘 풀린 무릎으로 독백을 읊조리며 '오늘은 이 무대가 끝나고 화장이 눈물로 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대사보다 더 큰 목소리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모든 대화가 연극일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어떤 대화가 끝나면 다음 무대가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대화가 끝나면 무대의 사이즈가 바뀌기도 한다. 어떤 대화가 끝나면 무대 위의 연기자들이 교체되기도 한다. 어떤 대화가 끝나면 관객들이 웃기도 한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입을 다물 것이다. 우리가 대화했던 자들 중 일부는 장례식 조문객이 될 것이다. 내가 없는 장소로 그들이 나에 대한 기억을 담고 찾아올 때 우리가 나눈 대화가 가녀린 방향이 되어줄 것이다. 결국 모든 대화는 유언의 일부가 된다. 모든 대화는 과거가 되고 모두의 미래는 죽음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