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에서 산다는 것

by 백승권

물리적 공간으로서, 삶에서 차지하는 집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땅 위에 사는 사람의 숫자만큼 집에 대한 이야기도 가지각색일 것이다. 부동산 이슈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집은 충분히 뜨거운 주제. 소유의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에도 집은 여전히 갈망과 집착이 뒤엉켜 한없이 개인의 지위를 뒤흔드는 존재다.


중학생 때 2년 정도 친척집에 살았다. 이후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기숙사 생활. 입대 전 몇 달 친척집에 살았다. 20대 후반, 인턴으로 취업을 하며 자취를 시작했다. 회사도 빌라도 역삼동이었다. 결혼을 하며 잠실 전세를 살다 용인 전세로 이사했다. 지금은 수년 전부터 동탄에 산다. 여기서는 지난해 이사를 한 번 했다.


주말, 아이와 놀다가 바닥에 눕기도 하는데 천장을 멍하니 본다.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여전히 생소하다. 처음 이사 온 날부터 '크흐허흙 마침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되다니, 12년 전 반지하 살던 내 인생이 플렉스(?)다!!' 이런 심정에 벅차오른 건 아니었다. 서류 상에 나와 아내 이름이 기재된 집.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 계약 만료 시즌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또는 이제 단지 집 소유의 유무가 아닌 거주와 생활 조건 등을 따지게 되는, 집에 대한 관점과 방향이 달라졌다는 점. 아이와 아내와 함께 더 나은 조건을 살피게 되다가 문득 여전히 몸과 기억에 남아있는 지나온 집들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앞서 열거했던 남의 집의 이름들, 친척집, 기숙사, 월세, 전세... 사는 동안 하루하루에 집중하며 여러 불편함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모를 수도 무시할 수도 없다. 365일 24시간 머문다 하여 남의 집의 '남'이 '나'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 최면을 걸 수도 있겠지.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같은 장소로 무리 지어 외출을 나가거나 또는 일행이 없이 독립가구로 산다 하더라도, 매달, 매년(2년) 타인의 이름으로 찾아오는 계약들. 긴 숨을 내쉬어도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있는 기분이다. 특히 정식 계약한 집이 아닌 여러 사정으로 가까운 타인의 집, 타인의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살게 되는 거라면.


직접 부지를 알아보고 설계를 의뢰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결국 기획된 공간에 거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집 구조는 만인에게 강요된 기호 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많은 시간 거하고 다니고 멈추고 생각에 잠기고 잠들고 먹고 마시고 뭔가를 계획하는 공간이라면, 스스로(적어도 동거인과 협의 하에) 선택한 것들로 꾸미고 싶을 수 있다. 내가 스스로 고른 취향의 집합으로 채워진 곳이 '우리 집'이길 바라게 된다. 좋아하는 브랜드, 디자인, 소재와 원산지, 마감의 완성도, 창의 크기,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 책장, 소파, 침대, 조명, 세면대, 샤워기 하나까지. 일상의 세부를 면밀하게 감지하는 사람들에게 '이것들이 대부분 나의 취향'인 것만큼의 자유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이미 타인이 취향과 선택을 선점한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일. 시야를 채우는 실내의 풍경부터 이른 새벽과 한낮의 촉감까지, 타인의 집에서 내 것은 없다. 그만큼의 내 권리도, 나로서 존재하는 자각도, 내가 나를 알아보는 방식도. 남의 집에선 작고 좁고 없다.


건너뛰거나 무시하거나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면, 아니 그게 가능한가. 생존이 더 중요해서, 아직은 괜찮아. 그런 시기도 있었다. 누울 시간만이라도 내 자리 내 공간이 확보된다면 그걸로 됐지 뭐. 여기서 영원히 지낼 거 아니니까. 하지만 언제. 언제까지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쌓이지 않는 잔고를 바라보고 의식하는 목소리로 인사하고 기다리고 여길 나갈 날, 그 기약 없는 날을 기다리고. 남의 집에서 나의 집을 찾고 있던 날들. 바닥과 벽, 천장과 문으로 둘러싸인 일정 면접의 공간을 넘어 생각과 태도와 취향의 테두리가 오롯이 나로 시작해 나로 마무리되길, 나의 영향권 아래 기능하길 바랐던 시간들. 이게 수백일 전 이사 온 집의 천장을 바라보다가 잠시 상념으로 스쳐 지나는 버그 같은 걸까. 이미 진하고 날카롭게 쌓이고 새겨져서 생과 몸과 맘의 일부가 된 건 아닐까. 어떤 새집으로 옮긴 들 기억하게 될 것들. 조용히 닫던 문, 어색한 밥상, 애써 밝게 이야기했던 시도들, 내가 선택하지 않았어도, 내가 자초한 것 같았던 타인의 흔적들, 소리들, 감촉, 풍경, 중간 결과들, 조바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순간들. 주말, 아이와 놀다가 잠시 생각이 났다. 지금 집 곳곳을 마주하며 이따금 생각이 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