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의쥰 Aug 28. 2024

11. 마주 보고 있는 거울


다음날,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카페로 출근했다. 카페 문을 열자 무료해 보이던 사장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요즘 카페 사장은 내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흠뻑 빠진 듯했다. 사장을 웃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기묘한 상황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사장이 잔받침에 받친 커피를 내밀었고, 나는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사장은 내게 커피를 줄 때면 항상 카페에서 가장 좋은 잔세트를 사용했다. 나는 이를 직원을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고, 커피를 받을 때마다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오늘도 고개를 숙인 다음 커피를 받아 들며 어젯밤 소설 속 수호의 모델이 되었던 성호라는 ‘실제 인물’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자살? 왜요?”  

“모르겠어요. 항간에는 자살이 아니다, 정치인 누군가에 의해 자살을 당한 거다 뭐 그런 얘기도 돌지만 성호… 그 변호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라서요.”

“유서는 발견됐대요?”

“모르죠. 뭐… 단신기사 몇 줄 난 게 전부예요.”  

“소설 속 수호도 자살한다고 했죠?”

“그렇긴 한데.” 난 어깨를 으쓱하며 카페 사장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그게 뭐 꼭 그렇게 연관된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죽은 변호사가 그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요?”

“전혀, 일말의 가능성도 없어요. 만약 읽었다면 저를 가만 두지 않았을걸요? 그 자존심 강한 인간이 자신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그려졌는지 알기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 부동산 사업하는 친구는 읽었을 거 아니에요?”

“재석이는 읽었죠. 하지만 절대 성호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성호의 성격을 아는데 그걸 굳이 보여줬을 리 없어요.”

“흠.”

“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현실의 사건일 뿐이에요.”

“난 어쩐지 현실이 소설을 닮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소설을 쓴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사장이 눈을 빛내며 내게 물었다.

“에이,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에요.”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사장의 말에는 솔깃하게 하는 구석이 있지만 거기까지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우연의 일치는 세상 곳곳에 널려있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어젯밤 재석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왜 안 받았어요?”

“성호의 죽음에 대해서 얘기할 것 같아서… 사실 그런 생각을 했으면 받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받고 싶지 않았어요. 전화벨도 빨리 끊겼고요.”

“또 전화하려나? 어제 통화했으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사장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다시 전화하지 않을까요?” 자꾸만 소설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려는 듯한 사장의 태도가 오늘따라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애써 정리해 놓은 서랍 속을 누군가 다시 뒤져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할 말이 남은 듯한 표정으로 미적거리고 있는 사장의 등을 떠밀었다.

“자자, 이제 퇴근하세요. 집에서 주인님들이 기다리십니다.”

“뭐야, 나 내쫓기는 건가요?”

카페 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의미심장하게 보더니 코트를 입은 후,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속삭이고는 손을 흔들어 보이며 카페를 떠났다.


“현실과 소설 말이에요, 마치 마주 보고 있는 거울 같지 않아요?”


나는 왜인지 얼이 빠져서 멍청하게 선 채 카페 사장의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마침 들어온 단골손님이 내 모습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자신도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했다.



이전 10화 10. 송별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