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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엠 Jul 09. 2020

(S-1) 한국에서 독일 대학교 다니기

코로나 시대의 사이버대학교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순간이동으로 출퇴근을 할 거라 예상했던 2020년은 알고보니 전염병이 전 세계를 뒤흔든 대격변기였습니다. 그래도 예전의 우리가 생각했던 미래의 모습 중 하나인 재택근무와 사이버 수업은 상용화가 되어서 인류는 이 대 코로나 유행의 시대에 겨우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남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미래와 생각하지도 못했던 미래가 만나 지금 저는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2020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엔 시드니, 엘리엇, 포와 같은 영문학계열 작가들의 문학이론과 18세기 유럽 여성의 문학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문학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서울에 있습니다. 벌써 한국에 온 지 3개월이 다 되어가네요. 3개월 전만 해도 프랑크푸르트 시가지에서 학교 가는 버스를 기다렸는데, 지금은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에 가서 죠스바를 사먹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여름학기 모든 수업이 비대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업은 과제를 중심으로 진행이 됩니다. 학교 서버나 메일로 필요한 텍스트를 받고, 그것을 읽고 거기에 대한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다른 과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 전공은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거기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심지어 한 수업은 강의도 없이 과제와 에세이만 제출한다니까요! 교수님의 설명이 필요한 수업의 경우 인강마냥 녹화된 비디오를 보고 한달에 한 번 씩 줌 미팅으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합니다. 발표는 10분에서 15분 정도의 분량의 팟캐스트 녹음으로 대체합니다. 


학교 온라인 시스템에서 강의 자료를 내려받고 과제를 제출할 수 있습니다.


서울 모 아파트 방구석에서 배달앱으로 주문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독일 대학교 과제 제출을 위해 고딕체로 된 18세기 독일 문헌을 아이패드로 읽는 생활을 2개월 넘게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게 뭐하는 짓일까 허탈한 순간이 옵니다. 한국에서 독일 사이버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니. 코로나 시대가 만들어낸 웃기지만 슬픈 현실입니다. 저 자신 조차 3개월 전엔 생각도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겠죠. 한국에 비해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삶을 유지해오던 그 독일이잖아요. 인터넷 뱅킹을 하려면 은행에 가서 신청을 하고 우편을 2주 넘게 기다려야하고 대부분의 비대면 예약을 전화로밖에 안하는 이런 생활을 당연하게 하는 사람들이라고요.  이런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한순간에 가장 발전된 기술의 혜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답니다.





정말 이 코로나의 시대는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그들의 일상을 빼앗았습니다. 날씨 좋은 날 카페에서 친구와 만나서 커피 한 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지나가는 동네 이웃과 근황 토크를 하고, 저녁에 선선한 바람이 불면 비어가르텐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여름이 다가오면 휴가를 내서 한달동안 여행을 가는 그런 삶이요. 유럽에서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상승하던 시기,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통행금지령이 시행되었습니다. 독일의 경우 2인 이상의 대면 접촉을 금지하고 외출시 통행증을 반드시 작성해야한다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당연히 학교도 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도서관도 멘자도 강의실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다음 시간 수업 자료를 읽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복사하고, 로비층 카페테리아에 내려와 아직 따끈따끈한 프린트를 읽는 일상은 이번 학기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서 한적한 캠퍼스의 모습


약 만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얼굴과 종이 대신 모니터 화면을 보는 기괴한 한학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수업의 내용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저는 그 이전 학기와 마찬가지로 작가들의 문학론과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여성 문인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학교 야외 테이블에서 아펠쿠헨을 먹으며 읽어도 서울 집에서 김맛 스낵을 오독거리면서 읽어도 지금 이 순간이 텍스트에 대한 지식을 쌓는 시간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코로나 시대로 생활이 달라지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겪고 있지만, 지금의 공부를 계속 하는 한 이러한 텍스트와 계속 씨름해야합니다. 기술의 도움을 받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의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지만 그 내용은 바뀌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 처럼 보이는 이 코로나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어제 학교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다음 학기에도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학기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군요. 저는 더 이상 독일 집을 비워둘 수 없는 관계로 조만간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어쩌면 다음 학기는 독일에서 학교 가지 않고 독일 학교 다니기가 될 수도 있겠네요. 아무리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다 해도, 학교 캠퍼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코로나 이전의 생활이 그리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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