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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 Sep 12. 2024

27살, 위암4기입니다.

2023년 스물일곱, 암과의 동행을 시작하다

2023년 11월 7일 화요일


위암 진단을 받은 오늘

밤이 되니까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아서 기록한다

사실 괜찮은 척 하지만 갑자기 울컥하기도 하고..

아직 실감도 안나는 것 같고 그래도 주변사람들한테 말하고 나니 조금 괜찮은 것 같다


언제부터였을까

회사에서 점심 먹고 나면 소화가 안 돼서 퇴근하기 직 전까지 소화 안 되는 소리도 나고 더부룩함에 불편함 을 느꼈는데 그냥 위염이겠거니,, 스트레스받아서 그 런 거겠지 하고 넘겼다


추석 연휴에 이유 없이 열이 나고 크게 아팠고,

10월이 되니까 물만 마셔도 소화가 안되고 더부룩한 느낌에 명치, 가슴통증까지 괴로워서 병원을 갔다

역시 위염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버텼다


그렇게 몇 주를 약에 의지하면서 음식을 먹었다

위염이라기엔 증상이 너무 심한 것 같아서 병원을 한 번 더 갔다 똑같은 소화제를 처방받고 집에 돌아왔는데 뭔가 이상 해서 위내시경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동네 병원에서 위내시경을 받는 도중, 위 상태를 보고 심각성을 느낀 의사 선생님께서 조직검사를 했고 위궤양진단과 함께 혹시 몰라서 조직검사를 한 상태라고 정확한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그 일주일 후가 바로 오늘 11월 7일 화요일


사실 이렇게 소화가 안되고 아픈 와중에도 퇴근하면 저녁 먹고 늘 디저트를 양껏 시켜 먹었다

이게 내가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술도 몇 달에 한번 마실정도로

즐기지도 않고, 흡연도 안 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식습관, 스트레스) 여기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도.. 위암이라니

스물일곱 살에 위암이라니


병원에서 꾹 참고 있었던 눈물이 집 가는 길에 갑자기 쏟아졌다

길에서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냥 엉엉 울었다


치료고 뭐고 다른 것보다 부모님 생각에 너무 아프다

우리 엄마아빠는 나를 이렇게 세종에서 혼자 잘 살아갈 수 있게 스물일곱까지 공들여 키우고 나서도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더 좋은 일은 바라지도 않으니 건강 하나만 지켜달라고 기도했는데 이거조차 들어주지 않는 누군가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번연도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살았던 나 자신도 너무 싫어진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20대에 위암이 걸린 사람은 거의 찾을 수 없다

도대체 이런 일이 나한테 왜 생긴 거지?


위암 진단을 받고 내 발걸음이 처음 향한 곳은 회사

공백이 계속 생길 것 같아 팀장님께 말씀드렸다

팀장님께서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같이 우시는데..

회사에서 정말 쉽지 않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우선 이번주는 계속 병가 쓰지만 아마 회사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회사를 나와서 혼자 호수공원을 걸었다

친구들과 전화를 하며 걷다 보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번주 목요일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간다

대학병원 예약하기 어려운데 암 진단서가 있어서 비교적 예약을 빨리 할 수 있었다

대학병원에 가면 이제 실감이 날 것 같다


아침에 엉엉 울고 난 이후로는,

아직 실감이 안 나서 그런지 많이 덤덤하다

지금 상태로는 그냥 조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말 그 말 한마디만 듣고 싶다


나보다 더 아파할 부모님이 너무 걱정된다

신이 있다면.. 제발..


2023년 11월 9일 목요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차분히 써 내려가는 글


사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많이 덤덤한 편이다

엄마아빠는 내 걱정에 한달음에 세종으로 왔고 생각보다 밝아 보이는 모습에 한시름을 놓은듯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지내야지...


화요일 암 진단을 받고, 바로 예약한 대학병원


첫 진료 시, 내시경 받은 병원에서 가지고 갈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챙겨가는 게 좋다

나는 동네병원에서 진료의뢰서, 조직검사 결과 슬라이 드, 내시경 cd 등 다 챙겨주셔서 그렇게 서류들을 가지고 대학병원에 방문했다


위암.. 위암환자라는 말이 아직 너무 낯설다

내 얘기가 아닌 다른 사람 얘기를 전해 듣는 것 같고

교수님 말씀을 들으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 자신이 너무 신기하다


증상이 있어서 극초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초기일 거라 믿고 그래야만 한다고 기도했는데 위암이꽤나 넓게 퍼져있다고 했고, 이미 초기는 지난 상태

우리나라 위암환자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20대 위암환 자는 아직 드물다고 말씀하셨다


산정특례, 하루아침에 국가에서 인정하는 중증환자가 됐다

대학병원에서 산정특례 대상이니 바로 등록을 해주겠 다고 하셔서 내 상태가 그만큼 너무 심각한 건 아닌지

걱정은 됐지만…


암 치료비의 5%만 부담을 하면 된다고 한다

입원비나 비급여는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데 오늘 검사만 받았는데도 벌써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운이 좋게, 첫 진료받자마자 이렇게 검사까지 받기 쉽지 않은데 20대라 암세포가 더 빠르게 퍼진다 고 해서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수술 날짜도 다음 주로 잡혔다


다음 주 수요일 입원, 금요일 수술

CT 결과가 좋아야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되면 수술은 받고 싶어도 못 받는다고 한다

위암은 수술받기도 너무 어렵고 힘들구나


위암세포는 당류를 좋아해서 수술 전까지 당류 섭취는 자제하라고 하셨다

이때까지 밥만큼 당을 많이 먹었는데 큰일이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가 넘도록 진행된 7개의 검사 CT촬영할 때 조영제를 주사하는데 여러 가지 부작용 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을 들었다 처음이라 겁도 날만한데 그냥 아무렇지 않게 검사를 하고 나왔다


다만, 검사시간이 하루종일 길어진 만큼 공복시간도 길어져서 힘이 빠졌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부모님을 보 고 힘을 냈다


주삿바늘을 여러 번 꽂았다 빼고 살면서 한 번도 받아 보지 않은 검사들을 받으니 건강을 챙기지 못한 나 자 신이 또 미워지기도 한다


수술받기 전까지 몸관리, 멘탈관리 잘하고 제발 수술 탈없이 잘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수술하기가 무섭기 도전에 수술을 못할까 봐 무섭다


사실 나는 아직 위암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인 것 같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대학병원에 가기 전까지

그동안 멘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주변에서는 너무 씩씩해서 마음이 놓이는 한편 걱정된 다며 슬프면 울어도 된다고 하지만 정말 실감이 안 나 서 실감이 안나는 채로 그냥 지냈다


이제 고작 일주일 지났구나

일주일 사이에 갑작스럽게 위암 진단을 받고 진단을 받자마자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퇴사를 하 고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그냥 꿈같기만 하다


원래는 수요일에 대학병원에서 마지막 pet-ct검사를 받고 바로 입원수속을 밟아야 하는데 병원에서 하루라 도 더 빨리 진행하자고 해서 화요일에 검사결과를 듣 고 입원 전 검사를 하러 왔다


pet-ct 펫시티는 암세포의 크기와 확산정도, 다른 장기에 퍼져있는지 확인 가능한 검사라고 한다

이 검사 결과가 좋아야 위암수술을 받을 수 있어서

다른 것보다 제발 수술만 받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위암환자들에게 수술은.. 어쩌면 희망과도 같다 받고 싶어도 못 받는 게 수술이기에


소화가 많이 안되긴 하지만 살이 급속도로 빠지면 안 돼서 건강하게 밥을 챙겨 먹고 있다

건강한 음식들로 내 몸을 채워나가니까 몸도 편안한지크게 아프지도 않은 것 같은데 소화가 안 되는 게 가장 큰 증상이다

병원 가기 하루 전에는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걱정했지만 몸도 병원 가기 전에 긴장을 하는 모양이다


pet-ct 검사 전에 저번주에 받은 검사 결과가 나와서 병원에 한 시간 정도 앉아서 기다리다가 교육실이라는 곳에서 교수님들이 모여 검사 결과를 알려주셨다

ct만 봐도 간, 림프절, 복막까지 암이 퍼져있는 상태 수술도 어려운 위암 4기라고 한다


최악의 상황까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내 발로 걸어서 병원 온 거 자체에 감사하다고 긍정적으로 왔는데..

4기라니.. 그것도 제일 최악인 상태인 복막전이


소화기외과에서 혈액종양내과로 담당 교수님이 바뀌었고 교수님은 이미 많이 전이된 상태로 전이속도까지 엄청 빠르다고 입원 후에 추가 검사를 하고 바로 항암을 진행하자고 했다

더 큰 병원으로 가고 싶으면 알아봐도 된다고 하셨지 만 난 여기 교수님을 믿고 치료해보려고 한다


한 번에 많은 것들을 들어서 정신이 없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감당이 안된다

무엇보다 엄마아빠 생각에 너무 미안해서 힘들다

효도 한번 제대로 못했는데 이것만큼 불효가 있을까

하늘도 무심하지


병원에 누워있는데 일어난 모든 일들이 꿈같다 두 달 정도 항암 받고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얼마나 아플지 감히 상상이나 안되지만..

미래는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부터 나는 위암과 제대로 싸워야 한다

어떤 상황이 생겨도 꼭 이겨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스물일곱, 암과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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