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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 Oct 07. 2024

또 하나의 변화

탈모와 삭발

아무래도 항암 하면서 마음이 많이 단단해진 것 같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잘 울지도 않고 무덤덤해졌달까?


이번에 약이 바뀌고 머리 빠지는 과정에서 많이 우울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저 1차 약과는 다르게 숭덩숭덩 빠지는 머리가 신기했고

그렇게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씩씩하게 민머리를 맞이했다

내성이 생겨 약이 바뀌는 상황을 겪어서 그런가

머리카락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지냈던 것 같다

사실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픈 것보다 이게 훨씬 괜찮으니까..


나을 수만 있다면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암환자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

창백한 얼굴에 민머리와 그 민머리를 가리기 위해 두건을 쓴 모습

최근 유명한 여배우가 연기를 해서 이슈가 됐던 암환자가 주인공인 드라마에서도 딱 그런 모습이다


난 그런 암환자의 고정적인 관념, 이미지가 싫다

나는 암에 걸리고 나서 지금까지 원래의 내 모습을 잃지 않고 지냈다

(나는 원래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겉으로만 보면 아무도 암환자인지 모르겠는데?’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 말이 좋다


함께 알고 지내는 암환우분들도 겉모습만 보기에는 암에 걸렸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요즘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회사를 다니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일상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물론 개인차가 크긴 하지만..


사실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이 보이는 이미지에는 큰역할을 하는 것 같긴 하다

작년 11월, 항암치료를 하기 전에 당연히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생각해서 벙거지를 제일 먼저 구입했던 나니까


그렇게 머리가 빠지기 전, 마음을 굳게 먹고 준비를 했으나 처음에 맞은 항암제는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탈모가 올 정도는 아니어서 숱이 많이 줄어든 머리로 그렇게 원래 내 모습을 지키며 지낼 수 있었다


내성이 생겨 바꾸게 된 이번 2차 약제는 탈모가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고 머리 빠지는 속도가 어마무시해서 ‘14일의 기적’이라고 암환자들 사이에서 말한다

말 그대로 14일이 지나면 머리가 다 빠지고 골룸처럼 한두 가닥씩 남아 있다


나는 매일 일어나서 베개에 한 뭉텅이씩 빠지는 내 머리를 보며 머리카락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가 다 빠지기 전에 버티지 않고 쿨하게 밀어 버렸다


우선 삭발을 한 후기는 항상 앞머리 없는 여성스러운 긴 머리 스타일만을 고수했던 내가 이렇게 대변신을 할 줄이야

머리를 밀고 나니까 정말 후련하다

원래 디자이너가 5명 이상되는 큰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었는데 공개적인 곳에서 머리를 미는 게 조금 그래서 개인 미용실을 찾다가 우연히 한 미용실을 발견했다

머리를 미는 것도 괜스레 죄송해서 사장님께 조심스레 여쭤보고 방문을 했다


처음 방문한 미용실인데 원장님께서 너무 좋으신 분이다

머리를 미는 과정에서도 예쁘게 싹둑싹둑 먼저 가위로 잘라주시고 바리깡으로 밀어주셨다

원래 머리를 자르는 것과 똑같이

원래 미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고 싶었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내 눈에만 가득 담아두고 영상으로 담아둘걸 조금 후회가 된다

미용실 원장님께서 두상이 작고 예뻐서 마네킹 같다고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정성스럽게 머리 밀고 다듬어주신 원장님 감사합니다


삭발한 내 모습은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

살면서 처음 본 내 두상~ 정말 동글동글하다

‘나 이렇게 생겼었네 나쁘지 않아’

머리를 자르고 집에 와서는 그냥 모자를 쓰고 헬스장을 다녀왔다 체육복을 입고 모자를 쓴 내 모습은 제법 힙해 보여서 웃었다

주변사람은 잔뜩 걱정하고 맘 아파하고 당사자인 나는 오히려 괜찮은 하루, 머리 민 모습보고 마음 아파할 필요도 없고 똑같은 나니까

낫는 과정이라고 편하게 생각해 주길!

그리고 오늘을 겪어보니 나 정말 많이 단단해졌구나.. 대견하다


두상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며 눈물이 맺히는 엄마와

워낙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나인걸 알아서 마음이 아프다는 내 친구, 우울해할 줄 알았는데 덤덤해 보여 그게 슬프다는 내 남자친구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사랑해 주는 내 사람들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내 사람들이 모두 옆에서 응원해 주고 나 대신 울어줘서 나는 이렇게 웃으면서 덤덤하게 지낼 수 있나 보다

오히려 요즘 나는 큰 걱정 없이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내는 중이다


구매한 단발 가발을 쓰고 여전히 나는 암환자가 아닌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지내고 있다

머리카락 같은 건 아무렴 어때

지치지 말고 이대로 쭉 달려보자 이겨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2차 약제를 맞으며

암과 함께 동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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