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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 Oct 03. 2024

위암4기 항암일기: 항암내성

부딪히는 현실

2024년 8월 13일


기적을 보여준 5월의 다학제 이후,

피부발진 부작용에 간지러워서 잠도 못 자고 몇 주를 엄청 고생하고 그 흔적은 내 온몸에 남아있다

그렇게 발진으로 인해 항암을 한 달 쉬는 동안 야속하게도 명치통증과 함께 빠르게 다시 암이 생겼고 계속 항암치료 유지 중인 상태

오늘은 17차 항암 그리고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내시경, ct, pet-ct)

저번에 항암 할 때 약제를 바꿀 수도 있다는 언급이 있었기 때문에 항암약에 내성이 생겼으면 2차 약으로 바꿔야 해서 오늘까지 마음을 굳게 다잡고 왔다

이제 마냥 좋은 결과만을 기대하지 않기로 그렇지만 무너지지 않기로!

한 번의 큰 기적이 일어났던 나는 이제 없다

다시 이겨내야 한다


항암치료받는 병원에서의 2박 3일을 제외하고는 입맛도 체력도 금방 돌아온다

여러 가지 부작용은 당연히 함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잘 먹고 잘 지내면서 구토 한번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운이고 기적이 아닐까

처음에는 수술도 받고 완치를 하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냥 지금 내가 지내는 모든 시간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잘 맞는 항암제를 만나 큰 부작용 없이 16차까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하다

누군가는 겉으로만 보기에는 잘 지내고 있는 일상들을 보면서 암을 가볍게 여길수도 있겠다

‘생각보다 암 버틸만한가 본데?’

나는 조금은 예외인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이 일상들을 누릴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다


하지만 암은 기수라는 게 있다 4기 암환자는 조금 더 가까이 죽음의 코 앞에서 하루하루 몸도 마음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마음을 평생 알 수 없을 거다

똑같은 4기 환자임에도 이렇게 일상을 보내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드니까..


일상생활을 지내다 보면 알 수 없는 복통에 배를 부여잡고 고통이 없어질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틸 때도 있고, 명치가 찌를 때마다 약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지금 당장 눈앞의 것들을 보면서 감사하자고 몇 번이고 다짐한다

사실 이번에 pet-ct 결과를 미리 볼 수 있었다

원래 검사결과를 외래 전까지 먼저 보지 않는데 이번에는 미리 보고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했다

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은 결과..


전이라는 단어와 함께 온몸의 장기들이 언급이 되는데 이건 뭐 전이가 안된 곳을 찾기가 더 빠를 정도

정말 빠르게도 암이 다시 생겼구나

8개월 그리고 16차까지의 항암을 버티고 이겨왔던 시간들이 다시 처음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실감이 안 나는지 외래 전까지 마음을 다잡았고 오히려 이런 큰 일들은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보내는 모든 순간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정적인 생각에 무너질 때마다 다시 재빠르게 일어서야 한다 나는 어떤 상황이 와도 충분히 이겨낼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과 매일 러닝머신을 한 시간씩 달리고 운동을 했다

이 악물고 싸워야지 몇 번이고 마음을 먹는다


17차 항암이 아닌 새로운 2차 약제와 다시 시작하는 항암

예상했지만 역시나 내성이 생겼고 오늘부터 항암제가 바뀐다

항암제: 사이람자 + 파클리탁셀 (4주 요법)

4주를 1사이클이라고 한다

(1주 차: 사이람자+탁셀, 2주 차: 탁셀, 3주 차: 사이람자+탁셀, 4주 차: 휴약기)

사이람자(Ramucirumab) : 표적 항암제

파클리탁셀 (Pacitaxel) : 주사 항암제

탁셀 요놈이 그렇게 독하고 무섭다고

이제 2박 3일 입원항암이 아닌 매주 병원에 와서 당일에 맞고 3-4시간 정도 후에 바로 퇴원!

병원에 오래 있지 않아도 돼서 체력적으로는 힘들긴 하겠지만 이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초반에는 마음이 힘든 시간들이 있겠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다 지나갈 거라고 믿고

젊어서 암이 빨리 퍼지는 만큼 약도 빨리 들 거라고

처음에 맞은 항암제처럼 눈에 띄게 다시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교수님께서 이런 소식을 듣는데도 항상 씩씩하게 웃어줘서 고맙다고 힘든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주셨다 그리고 교수님 앞에서 처음으로 흘린 눈물..

처음처럼 굳게 마음먹자!

난 이 세상이 너무 좋고 아름답다

고작 내 나이 28살, 아직 못해본 것도 많다

그래서 오래오래 살면서 다 경험해보고 싶다

새로운 탁솔, 사이람자! 큰 부작용 없이 잘 넘어가길


이제 나는 새로운 약과 싸울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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