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여름 내내 제주에 있었다. 제주살이를 끝낼 무렵 그 뜨거운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와 한 식당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다. 수육과 물밀면, 비빔밀면이 메뉴의 끝. 그곳은 독특하게도 수육을 찍어 먹는 양념이 된장이나 고추장 계열이 아니었다.
문제의 양념장. 지금 보니 테이블 색도 우리 집 같다. ⓒ 이현희
이곳의 주메뉴인 밀면에도 전부 그 양념장이 들어간다. 수육은 그 양념에 찍어 먹는다. 고추장도 아니고 된장도 아니고, 그런데 전부 다 너무 맛있어 그 많던 수육과 밀면을 전부 해치웠다. 육지로 돌아간 후에도 종종 생각나는 감칠맛에, 항상 내 망태기에 품어둔 식당이 됐다.
시간이 지나 나는 또 동생과 제주를 찾았다. 그리고 그 식당에 가서 '맛집'이라며 동생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다시 맛보았고, 동생이 허무한 소감을 내놓았다. "이거 엄마 간장양념 맛이잖아." 계속 생각나던 그 맛은 엄마의 만능 간장양념과 완전히 똑같았다.
간장양념 묽은 버전. 엄마의 호칭을 따라 '양념간장'이 아닌 '간장양념'이라고 불린다. ⓒ 이현희
감칠맛이 필요한 순간이면 우리 엄마가 내놓는 바로 그 비법 '만능 간장양념'. 동생이 좋아하는 꼬막무침과 양념게장, 엄마가 좋아하는 두부 부침, 아빠가 좋아하는 만두를 찍어 먹는 간장도 전부 같다. 무슨 요리에 들어가는지 일일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정말 알차게 잘 쓴다. 요리에 따라 어떨 때는 좀 되직하게, 어떨 때는 묽게, 또 어떨 때는 파가 엄청 많이 들어간다.
처음 그 식당을 방문했을 때는 전혀 엄마의 맛이라고 인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보면 감칠맛은 똑같고 되직한 버전에 가깝다. 엄마는 그 간장양념을 수육에 찍어 먹으라고 준 적은 없을 뿐더러, 두 달간 엄마의 요리를 못 먹은 상태로 방문해 '아는 맛'을 '맛있는 맛'이라고 착각했다.
두 번째로 다시 그 식당을 찾았을 때, 다시 맛본 순간 엄마의 맛을 느낀 것은 참 웃기게도 역시 엄마 때문이었다. 너무 맛있는데 제주에 여행 왔을 때 아니면 먹을 수 없으니까, 엄마한테 만들어달라 할 마음에 아주 분석하듯이 첫입부터 음미했으니까.
“자세하지 않은 엄마의 만능 간장양념 레시피”
01 파를 필요한 만큼 쫑쫑 썰어준다.
02 다시마 우린 물을 준비한다. (생략 가능)
03 파, 참기름,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진간장을 넣고 다시마 물(없으면 생수)과 함께 섞어준다.
04 이상하게 깨를 징그러워하는 두 딸 때문에 깨는 생략한다.
05 비율은 정해진 게 없다. 엄마께 여쭤보니 '엄마 요리에 비율은 자신이 없어"라고 답하셨다.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이 엄마의 맛과 똑같은 맛이라니. 지금도 동생과 그 식당을 재방문 했을 때, 늘 먹던 그 맛이라며 어이없어하던 그 눈빛이 생각난다.
간장양념과 찰떡궁합인 시래기 밥. ⓒ 이현희
같은 과일도 엄마가 사준 과일이 더 맛있는 것처럼, 나는 역시 엄마의 맛이라 더 맛있었던 거라고 우겼다. 제주에 살던 나는 내 돈 내고 예쁜 식당과 카페는 그렇게 많이 가면서도 이상하게 그렇게 좋아하는 여름 과일들은 사 먹지 않았거든. 그저 멀리 있는 육지의 엄마에게 천도복숭아랑 아오리사과가 먹고 싶다고 노래만 불렀다. 그런 나를 위해 제주도까지 천도복숭아와 아오리사과 10개를 사서 보낸 엄마. 엄마의 맛이라면 무엇이든 나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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