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가 속상하면, 너무너무 속상하면>을 읽고
“소피는 나무를 타고 오르며, 손바닥으로 매끄러운 껍질을 느껴 보아요. 나무껍질, 나뭇가지, 그리고 이파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아요. 위를 쳐다보니 나뭇잎이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요. 소피는 높은 가지에 걸터앉아 나무를 끌어안고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요. 나무에서 내려와 그 마음을 모두 품고 집으로 돌아가요.”
- <소피가 속상하면, 너무너무 속상하면> 중에서-
“다녀왔습니다.”
친구들과 놀고 오겠다고 연락을 한 아이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오며 외친다. 금요일은 어둑해질 때까지 마음껏 놀다 들어오는데, 창밖이 환한 시간에 아이의 목소리가 집안에 퍼지는 것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바쁜 주방일에 밀려서 갸우뚱하는 마음을 찬찬히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아이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주방에서 큰 소리로 아이를 맞이했다. 마침 신나게 물놀이를 마친 동생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형을 반갑게 맞이했다.
“야!! 오늘은 나부터 샤워하는 날이잖아. 네가 먼저 씻으면 어쩌냐!!!!”
형은 반갑게 인사하는 동생에게 잔뜩 날을 세워 응수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아옹다옹해서 요일별로 샤워하는 순서까지 정해두었다. 금요일은 첫째가 먼저 씻는 날이었고, 약속을 어긴 동생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동생이 옷을 입는 내내 첫째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더했다. 첫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수긍할 수 없게 억지스러움이 가득했다. 그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내 마음도 불편해졌고, 동생 역시 뜬금없는 상황을 또랑또랑하게 맞섰다. 여전히 주방에서 손을 바삐 움직였고, 귀만 쫑긋 세운 채 아이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미간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혼자 아이들의 대화를 함께 했다.
“내가 너한테 같이 놀자고 전화했지? 내가 전화했을 때는 장난감 가지고 놀고 있었잖아. 내가 목이 얼마나 말랐는지 알아? 경비실은 순찰 중이라 문이 잠겨 있고, 친구들도 집에 간다고 하고… 물도 마시고 너랑 더 놀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네가 싫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내가 씻으려고 집에 왔는데 네가 먼저 씻어버리면 어쩌냐! 씻기 전에 먼저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허락을 구했어야지!!!”
식사 준비가 끝날 때지 두 아이는 옥신각신했다. 간간이 들리는 아이의 말속에서 집중한 덕분에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오라기를 발견했다. 밥을 푸다가 첫째를 불렀고, 그제야 아이와 눈을 마주한다. 아이는 입을 꾹 닫은 채 축 늘어진 모습으로 서 있다. 아이는 내 이야기가 끝나자 바로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아이의 팔을 잡고 간절하게 진짜 마음을 이야기해 주기를 부탁했다. 마음이 전해졌는지 갑자기 아이의 큰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내가 찾은 한 가닥의 실과 아이의 속마음이 딱 맞아떨어지자, 복잡하게 엉켜있던 실타래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아이는 밖에서 더 놀고 싶었는데 목이 말라서 물이 너무 먹고 싶었다고 했다. 동생에게 물을 가지고 나와서 같이 놀자고 부탁을 하려고 전화를 했냐고. 단칼에 나가기 싫다는 동생의 반응이 자신의 욕구를 바로 묻어버렸고, 결국 실망만 가득 안고 집에 들어온 것이다. 자신은 동생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기꺼이 손을 잡아 준 것만 떠오르니 얼마나 억울해하고 서운해했을까. 때마침 동생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상황을 꼬투리 삼아, 서운한 마음을 엉뚱한 곳에 쏟아낸 것이다. 뜬금없는 반응에 상대는 당황했고, 진심을 알지 못하니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첫째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조금도 해소하지 못했다. 오히려 상대와 지지부진한 말다툼만 이어가며 감정의 골만 깊게 파고 들어갈 뿐이었다.
감정은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강물처럼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야 한다. 강물이 다양한 물고기를 품는 것처럼 모든 감정을 기꺼이 품어야 한다. 늘 감정을 무시하고 억압하며 지냈는데, 마흔이 되어 감정의 가치를 깨달았다. 마흔에 받은 귀한 선물 덕분에 모든 감정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간다. 그 노력 덕분에 아이의 상황에 섣불리 참견하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며, 감정의 물길을 막지 않을 수 있었다. 꽉 막힌 물꼬를 트고 아이와 차분히 대화를 나누자, 아이는 자신도 몰랐던 마음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아이의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