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2

아빠를 기록하다

by 글쓰기바라봄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대학을 다닐 때였다. 나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부모님은 여전히 여수에 살고 계셨다. 방학 때는 집에 내려가 지내다 학기 중에는 다시 올라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학기 중에 아빠는 참 일찍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같이 일을 나가야 하셨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며 거의 매일마다 아빠와 통화를 했던 듯 하다. 아빠는 전화 통화 하지 않는 걸 굉장히 섭섭해 하셔서 되도록 시간이 날때마다 전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20대가 되면서부터 자취를 시작하다보니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빠의 허릭이 필요하지 않은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같은 공간에 살지 않으니 그냥 말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빠는 내가 어떤 생활을 하고 다니는지 의심하거나 크게 걱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생활과 나의 미래와 관련된 부분들은 거의 혼자 결정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대학시절 미래에 하고 싶은 일과 관련하여 동아리 같은 걸 만들고 운영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같이 만들게 된 팀원이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던 사람이라 자연스레 대구라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자주 온라인에서 만나고 친해지게 되었다. 학기 중 주말에 다 같이 대구에 놀러가는 일정이 생겼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이동해서 1박을 하는 일정이었지만 나는 굳이 아빠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어차피 나는 서울에 아빠는 여수에 있는데 지역을 이동한다 안 한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겼다. 보통 때처럼 그냥 전화로 안부를 묻고 하루를 보내면 그냥 흘러가는 하루처럼 될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드디어 대구에 친구들과 함께 내려가는 버스를 타는 날, 버스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데 아빠에게 아침 일찍부터 전화가 왔다. 아침일찍은 잘 전화를 하지 않으시는 성향이셨던 것 같은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평소와 같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는데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오늘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가야해서 지금 여수에서 출발한다. 오늘 오후에 도착하니, 아산병원 장례식장으로 아빠를 만나러 오렴."




나는 순간 얼어 붙었다. 내가 탄 버스는 대구로 이미 출발을 했고, 내 계획상 오늘 대구에서 자고 내일 올라오는 일정인데 어떻게 하지? 미리 말을 안했는데, 대학생활 내내 단 한번도 일때문에 바빠서 단 한 번도 서울에 올라오지 않았던 아빠가 하필 이럴때 올라오시다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는 결국 솔직하게 아빠에게 말하게 되었다.




"아빠 제가 사실 오늘 친구들이랑 대구로 가는 일정이 있고, 지금 내려가는 중이고 오늘 가서 내일 올거예요. 미리 이야기 못해서 죄송해요."




이런 내용으로 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아빠는 나의 갑작스러운 지방 이동과 허락받지 않은 외박등의 이야기들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끼신 걸로 기억한다. 뭔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던 것, 고집스러운 나는 중간에 대구 일정을 포기하고 서울로 가지 않고, 그냥 마음 불편한 채로 내 일정을 강행했다.




그 이후로 내가 거는 전화를 아빠는 받지 않았다. 굉장히 화가 나신 모양이었다. 전화를 걸 때마다 받지 않으니 나도 좀 화가 나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다 통화가 되었을 때는 나는 나대로 쏟아 붓고 아빠는 아빠대로 이야기를 하셨다. 결국 평행선이었다. 그런 시간이 한 참 지속되다 자연스럽게 그냥 예전처럼 사이가 좋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풀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와 딸 사이에 어떤 거창한 사과나 진심어린 마음 전함 이런 순간들 보다는 그냥 일상을 살다 아빠는 다시 나의 아빠로 나는 다시 아빠 딸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던 듯 하다.




돌아보면, 내 대학과 대학원 생활을 통틀어 유일하게 아빠가 시간이 나서 서울로 오게 된 날이었는데 나는 그날을 너무 쉽게 무시했다. 난 나의 결정이 우선이고, 내 생각이 늘 앞선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다. 아빠가 화내는건 어쩜 당연했는데, 나는 왜 그런거 하나 이해 못해주는 아빠에게 서운했는지....




서울에서의 생활 중 아빠가 나를 보러 와 주었던 순간은 그때와 나의 대학 졸업식이 전부였다. 딱 2번 중에 한 번이었는데, 아빠가 얼마나 당황스럽고 섭섭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서울로 대학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보내놨더니 딸이라는 녀석이 하고 싶은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이 아빠 입장에서는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지인의 장례식이 서울에서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에 올라오는 단체 버스를 타며 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지, 솔직히 나는 상상하기 어렵다. 아빠랑 서울에서 데이트 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는데 나의 20대에 난 그 날을 그냥 날려버렸다.


잘못을 하고도 제대로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딸의 전화를 받지 않고, 그깟일로 화를 내는 속좁은 아빠를 얼마나 탓했던지, 참 어리석고 후회되는 시간들이다.


말하지 않고, 모르고 넘긴다고 거짓말이 아닌 것이 아니다. 귀찮아서 그냥 넘기려고 말하지 않은 것도 속으로 한 거짓말이란 걸 깨닫는다. 아빠의 거짓말을 늘 나를 위한 것이었는데 나의 거짓말은 그냥 나만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때의 나를 기억하며, 아빠를 추억해본다. 상상해본다. 만약 내가 대구에 가지 않았더라면, 갔다가 다시 아빠를 보러 올라왔더라면 나는 인생에서 아빠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가정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빠의 그때 마음을 이제야 되짚어 본다. 벌써 20년이 흘렀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다. 다시 시간이 흐른다. 지금의 시간들은 아쉽지 않도록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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