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한이의 '엄마'가 되게 해 주어서 고마워
2018년 나의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23년 중반쯤이 되어서야 나는 ‘엄마인 나‘도 ‘나‘임을 받아들였다.
나는 ’ 엄마인 나‘도 완벽하고 싶었다. 모성애도 지극하고 교육도 인성도 사랑도 가득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욕심도 많아서 그대로의 ’나‘도 멋진 사람이 되어서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때의 기준으로)
육아휴직이 종료됨과 동시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이를 충분히 내 손으로 안아줄 수 있으면서 이전부터 꿈꿔온 일을 하겠다는 이유였다. 여기에는 친정 부모님에게도 맡길 수 없던 내 손으로 내 마음으로 아이를 돌봐주고 싶은 ‘엄마’로서의 욕심과 20대에 이루지 못한 꿈(직업으로의)도 이루겠다는 ‘나’로서의 욕심을 모두 채우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욕심도 많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나는 남편에게 열등감을 갖기 시작했고 해내고자 했던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아이는 어린이집을 갈 수 없게 되었고, 그 와중에도 한 번 해보고자 했던 내 의지는 남편은 회사를 빠지고 집에 일찍 오게 만들고 수익은 그다지 내지 못하는 그저 내 욕심이기만 했다.
‘만족’ 이 어려웠다. 나는 나에게 부여하는 기준이 높았다. 사실 기준이 있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부족했고 계속해서 만족하지 못했다.
작년은 아이가 5살이 되었고 유치원에 들어갔다. 아이가 유치원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온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음이 폭풍같이 몰아친 한 해였다. 유치원에서 부모 그룹 교육 안내가 있었다. 교육이 시작하는 첫 화상 모임에서 시작과 동시에 교육 내내 펑펑 울었다. 내 소개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분들 소개를 듣고 있을 뿐인데.
나를 괴롭히던 건 ‘나’였다. 아이가 아니었다. 첫째 아이를 불안도가 높은 아이로 바라보고 대하며 버겁고 힘들어하던 건 결국 해결하지 못한 어린 ‘나’의 아픔이었다. 나는 내가 어린아이였던 나를 치유해 주는데 5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내가 내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것처럼 ‘나’를 돌봐주세요.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나를 돌본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라 어떻게 돌봐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 감사일기를 그냥 매일매일 쌓다 보니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지금 내가 나를 돌봐주고 있구나. 내가 나를 쓰담쓰담 위로해 주고 칭찬해 주고 보듬어주고 있구나.’ 그리고 ‘엄마인 나’와 ‘진짜 나’를 구분하던 경계선이 무너지고 지금 ‘엄마’로써 최선을 다하는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엄마’ 커리어를 쌓고 있다.
‘나’라는 목적지를 가는 과정에 ‘엄마’ 코스를 지나가는 중이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고 잘하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지금 나를 돌보는 중이다.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