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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Mar 11. 2023

수영- 거리 50m , 수심 140cm

이것은 발레인가 수영인가.

엄지발가락만 아픈 이유.


중급반으로 올라가며 엄지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유난히 엄지가 저릿하고 운동화 앞코에 닿는 발가락이 욱신거리기에 발차기의 문제인가 의심했는데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날엔가 자세를 봐주겠다고 잠수하다 다른 사람들 발을 보게 되었다. 물안에서 보니 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물 위로 올라와서 보니 발가락으로 서있던 사람들은 나와 키가 비슷한 사람이다.

'아. 그동안 내내 까치발을 하고 있었구나.'

인식하니 키가 작은 회원들의 발이 이제야 보인다. 나와 키가 비슷한 할머니도 선생님도 나와 같이 발가락으로 서있다.


작은 자의 비애. 나는 그동안 수영을 했던 것인가 발레를 했던 것인가.



수영장에 서있는 내 모습. 악어가 따로 없다. © mateusmiliano10, 출처 Pixabay


상급반으로 승급하며 레일도 달라졌다. 25미터였던 레일 거리는 2배 길어졌고 수심은 10cm 높아졌다. 호흡이 좋아진 후로 거리는 문제 되지 않았으나 수심 10cm가 복병이었다.


160을 소수점으로 겨우 넘는 키를 생각하며 (140cm쯤이야) 안심했지만 내 생각에는 큰 오류가 있었다. 내 키는 얼굴길이와 머리길이도 포함된 수치다. 게다가 내가 믿고 싶은 키는 10년도 더 된 옛날옛적 키다. 아기를 한 명 낳을 때마다 1센티쯤 줄었다 생각하니(위로하니) 물속에 파묻힌 내 얼굴이 이해가 간다.


계단을 내려가 상급반 레일로 들어간다. 꼿꼿하게 서니 콧잔등까지 물이 참방 인다. "서있는 거 맞지?" 악어처럼 눈만 내놓고 있는 나를 보고 수영장 언니들이 웃어댔다. 강가에 돌계단이 된 기분이었다. 머리만 겨우 나온 나를 위에서 봤다면 밟고 건너도 되는 돌정도로 보일 것 같았다. (하필 돌멩이처럼 수모도 검은색이다.)

물속에 들어가면 어깨도 안보였기에 새 수영복을 입고와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애통하다. 하이힐도 신을 수 없는 수영장이여.


키가 작으니 선생님 설명을 들을 때나 레일 끝에서 기다릴 때 줄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오리발이 있으면 정도는 심해졌다. 까치발을 못서니 방심하면 허우적대다 물속에서 떼구루루 구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키가 작으니 수압으로 인한 가슴 압박도 남들보다 더했다. 푹 잠겨있는 탓에 숨을 깊게 못 쉬어 답답했다.


집에 돌아와 투덜이는 내게 첫째가 말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발이 안 닿았어요!"

아 그랬구나.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인지 몰랐다. 투정으로 치부했는데 당해보니 알겠다. 얼마나 무섭고 힘든지를.




한 달은 자세고 영법이고 생각할 틈도 없이 적응에 온 힘을 쏟았다. 몸에 힘을 빼려 노력했고 절대 빠지지 않을 거라 나를 안심시켰다. 한 달이 지나자 드디어 수압과 높이에 익숙해졌다. 무섭다 무섭다 하며 자유형을 하고 길다 길다 하며 50m를 왕복한다. 가슴이 답답해 숨을 얕게 쉬며 나만의 호흡법도 익혀본다.


그러던 어느 날. 힘들기만 했던 깊은 물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깊으니 접영 할 때 깊숙이 들어가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 전복 따는 해녀가 된 듯 쑤욱 물속으로 들어가 쭈욱 물타기를 했다. 물밖에서 유선형 자세를 만들고 뛰어드는 스타트를 할 때도 깊은 물은 안심이었다. 참방 들어가서 길게 잠영할 때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못하는 게 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못하는 게 느껴지면 포기해 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원래 그래..'

노력보다 포기가 편했기에 원하던 게 아니니 이 정도면 됐다고 정신승리를 했다. 성공의 기억보다 도망의 기억이 많았던 나는 성취감을 모르는 바보 겁쟁이였다.


수영을 배우다 보니 이제야 느낀다. 정말로 지는 건 포기하는 것이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나아가면 되는 거였다. 물이 깊을수록 몸은 잘 뜬다. 하던 대로 포기해 버렸다면 나는 이런 이치도 수영의 재미도 평생 몰랐을 것이다.


발이 닿지 않아 숨도 못 쉴 것 같던 무서운 물은 이제 내게 편안함을 준다. 물 깊이는 변함이 없다. 포기하지 않으니 변하는 건 나였다.


안 되는 걸 잡고 절절대는 것도 줄었다. 길게 보면 오늘 안 돼서 속상했던 건 순간의 기분일 뿐이다. 오늘 못하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그다음에 하면 된다.

잘하는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끝까지 해내는 자가 이기는 거라는 진부한말. 그 말을 이젠 믿는다.


거리 50m , 수심 140cm. 이제는 친숙해진 숫자다. 해냈더니 이제는 다른 것도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긴다. 이래서 운동을 배우나 보다.


글 쓰기 덕분에 행복해졌던 나는 운동으로 자신감을 찾는다. 나를 변화시켜 주는 글과 수영을 찬양하며 (악어의)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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