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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Sep 13. 2023

추석이라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광고인에게 빨간날은 신호등 노란색의 빛깔을 띠고 있다. 명확히 빨간불일 때가 있는 만큼 가끔씩 노란불로 갈팡질팡할 때도 있고 회사 출근이나 촬영장으로 출발하라는 파란불일 수 있다. 빨간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면 촬영 중인 지인이 간간이 보인다. 광고는 데드라인이 명확한 직무다. 고로 스케줄링도 명확하다. 온에어 전 심의, 시사, 편집 및 녹음, 촬영 등 넘어야 할 언덕이 많다. 이런 빡빡한 스케줄이지만 더 중요한 건 모델, 편집실, 녹음실 등 외부업체 일정과 조율해야 한다는 점. 보통 빨간날을 감안하지만 빠듯하고 또 빠듯할 땐 가차없다. 오히려 빨간날에 촬영한다는 건 빠른 결정일 수도.


 2022년 추석 연휴 중 하루를 촬영장에서 보냈다. 9월 1일 OT를 받고 9월 10일 뒤 촬영. 광고인이라면 전 문장을 다시 읽어봤을 테다. ‘잠만, OT가 9월 1일? 8월 1일 아니고?!’ 9월 16일에 출시되는 신제품이었고 견적이 크지 않은 디지털 소재여서 가능했다. 내부 회의에서도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안해 모델 활용은 하지 말자고 논의한 상황. OT 받고 하루 뒤 아이데이션 회의를 했었다. “아이디어의 단초라도 좋으니 자유롭게 생각 정리만 하고 모여서 디벨롭하자”는 팀장님의 말씀. OT를 받을 때 생각났던 단초 조각들을 이리저리 모았고 기존 광고 중 모델이 등장하지 않지만 임팩트가 있는 레퍼런스를 찾는 무한 스크롤의 반복. 그러던 중 비주얼적으로 좋았다는 해외 캠페인이 딱 생각났다.

cadbury 'Worldwide Hide'

 cadbury의 Worldwide Hide 캠페인. 코로나 시기 부활절 이벤트로 진행되었다. 전 세계에 달걀 모양의 cadbury 초콜릿을 숨겨 놓았으니 구글 맵에서 찾아라! 이 이벤트를 알리는 광고에서 우리 신제품의 키비주얼을 찾을 수 있었다. 재료를 부각시켜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있어서 정말 핏한 레퍼런스 아닌가. "신제품에 쓰인 재료들을 크게 보여줍시다!" 아이데이션 회의에서 아이디어가 팔렸고 구체적인 디벨롭이 척척 진행되었다. 이탈리아 랜드마크 옆의 인스타그래머블한 블랙트러플부터 프랑스와 스페인 랜드마크 주위에 당당히 서있는 디종 머스터드와 올리브오일. 랜드마크에 묻히질 않고 잘 보일 우리 재료를 위해 정말 수많은 랜드마크 스탁 영상을 봤었다. 또 다시 무한 스크롤의 반복...


 이런 정신없는 와중이더라도 촬영은 해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빨간날로 촬영이 잡혔고 첫 모델 없는 촬영장을 마주했다. 아늑한 원룸 같았다. 씨즐 촬영이 중점이라 삼성역 근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고 컴컴하고 습한 분위기를 덮고 있는듯했다. 소파에선 쿰쿰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빨리 코가 마비되길 바라며 모니터링을 이어갔다. 감자, 블랙트러플, 올리브오일이 카메라 원샷 받는 모습을 이렇게 길게 본 적이 있을까. 다행히 하늘이 푸르스레할 때 촬영이 끝났고 이대로 연휴를 보내기 아쉬워 침대에서 뒹굴뒹굴 중인 동네 친구들에게 술 한잔하자 연락을 돌렸다. 진짜 연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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