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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Oct 07. 2023

동아리에 찾아온 환절기

 2020년. 대학 4학년 무렵 외부 광고 동아리에 가입했었다. 한창 필드에서 뛰고 계시는 현직 광고인들을 멘토 삼아 총 8번의 광고 제안서를 발표하는 게 이 동아리의 메리트. 2023년이 되자 어느 순간 카피 멘토가 되어있었다. ‘다른 멘토님들에 비해 한없이 적고 소중한 3년차란 업력에 시기상조이지 않을까?’ ‘과연 내가 멘티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멘토 제안받을 땐 내심 뿌듯했던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거절하고 싶었던 것도 새파란 사실이다. 동아리를 마친 현직자 중 카피라이터가 몇 안 되어 멘토가 없다는 점, 그동안 도움받은 만큼 보은을 하는 건 도리라 생각해 멘토 자리를 수긍했었다. 생각보다 빨리 멘토를 맡게 되었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23기 후배들을 보면서 20기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고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등 타인에게 설레는 기대심을 갖게 되니까.


 멘티로서 내가 겪은 상황과 멘토로서 멘티들의 모습을 톺아보면 비슷한 패턴이 보인다. 사계절의 환절기처럼 멘티들에게 4번의 내적이든 외적이든 변화가 생기더라.


첫째 <설레나 봄>

 겨울의 정점 12월에 동아리 23기 지원자를 만나보는 자리가 있었다. 설렘은 늘 긴장감을 동반하지 않나. 새싹이 봉긋 피어나듯 한 명씩 슬며시 들어오는 지원자에겐 그 두 감정이 스며있었다. 열정 가득했다. 오히려 긴장했음이 티가 나는 목소리와 표정에서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인지가 드러났다. 근거 없는 여유보다는 근거 있는 떨림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려는 모습에 어울려 보였다. 사람을 평가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뭔데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까. 그래서 멘티 면접을 볼 땐 딱 한 가지만 봤다. 각자의 페르소나를 벗고 내면의 솔직함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지. 면접도 기브 앤 테이크다. 상대에 본인 마음을 보여줘야 같이 활동하고 싶다는 그 사람의 마음을 전달받을 수 있다. 면접이 끝나고 멘티가 결정되었다. 합격에 대한 기쁨은 봄처럼 짧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혼자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광고라는 세계에 발을 딛는 날이기에 앞으로 맞이할 바람, 비, 눈, 인상을 쓰게 할 강렬한 햇빛에도 아직 두려움보다는 첫 경험이라는 설렘이 가득하다.


둘째 <여름 더위에 지는 건 늘 나였다>

 3월부터 시작하는 팀 과제.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건 그 누구보다 쉽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고민되고 어려운 것처럼 광고도 그렇다. 멘토들이 가장 힘든 시기가 3월이 아닐까. 스케줄링부터 팩트북 개념 설명, 전체적인 프로세스 설명, 각자 혼용하고 있는 단어 및 개념의 정립... 막막하기는 멘티들도 마찬가지다. 과제 수행을 위한 현실적인 인사이트 및 전략 도출은 이상적 교육 과정을 추구하는 학교에선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첫 회의할 때는 우발탄 같은 아이디어들이 산발적으로 나온다. 기획 앞단 정리하다 말고 갑자기 크리 아이디어를 제안하지 않나, 메인 과제인 15초 광고 대신 스토리텔링 광고를 하고 싶어서 3분 길이의 시놉시스를 짜오지 않나.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이상적인 광고 욕심이 마구 표출되는 시기다. 찬물을 끼얹는 게 3월 멘토 역할. 과도한 열정에 스스로를 잡아먹히지 않도록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멘트가 난무한다. 예상과 달랐던 광고의 세계에 그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여차여차 과제를 제출하고 여러 멘토들의 피드백이 이어진다. 그 결과 3월부터 4월 사이에 가장 많은 퇴소자들이 탄생한다. ‘대학원을 간다’, ‘몸이 아프다’, ‘다른 길을 가겠다’ 폭염 같은 피드백을 견딘 자들에겐 이젠 더 이상의 더움은 두렵지 않다. 더위야 와라, 어차피 땀구멍은 열려있다란 마인드.


셋째 <가을 타나 봐>

 봄에 피어난 열정 가득했던 새싹이 어느새 낙엽이 되는 시기. 대 9월쯤 슬럼프가 온다. 광고에 대한 열정이 낙엽이 된 그 순간에도 멘티들은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떨어지는 이파리를 보듯 하루하루 현타를 느끼는 멘티가 있는 반면 누군가는 떨어지는 낙엽에서 중력을 발견하게 해준 사과를 연상하고 슬럼프를 이겨낼 메타인지를 시작한다. 9월에서 10월 사이에 각자 준비해 오는 아이데이션 장표들을 보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보인다. 생각의 난관에 부딪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보단 기존의 나왔던 생각의 디벨롭을 제시하는 팀원이 있는가 하면 피드백을 고려해 넥스트 스텝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하는 장표의 발버둥이 드러난다. 멘티들이 각자 준비한 아이디어들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땐 기존의 디벨롭보단 넥스트 스텝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하다. 본인의 아이디어가 팔린 멘티는 중력을 발견한 것처럼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트일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 남은 회의에서 목소리는 당당해지게 된다. 회의는 기세란 것을 몸소 느끼는 시간이지 않을까.


넷째 <겨울의 움츠림은 봄에 펼치는 기지개를 위한 것>

 스산한 가을을 벗어나면 또 두 가지 선택지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환절기가 기다리고 있다. 8번의 팀 과제를 겪은 멘티들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정보들이 머리에 가득할 것. 그래서 결국 광고를 할 것인가 아닌가 이 두 가지 선택의 답은 내리지 못한 채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겨울은 갑작스레 오지 않는다. 우리도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감지하고 있다. 겨울을 지나 봄에 꽃이 피는 식물은 대개 지난해 늦가을부터 준비한단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세상에 모습을 감춘 채 생존에 돌입하는 것처럼 멘티들도 사실 내색하지 않아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다. 광고인이 될 것인가 아닌가. 20기 때를 보면 동아리를 수료한 14명 중 지금까지 6명 정도가 광고를 하고 있다. 다른 기수에 비해 많이 하고 있는 편이라는데... 23기의 선택은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적극 환영하고 싶다. 광고는 광고인이 제일 열심히 본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좋은 광고를 만들고 싶다는 그 진심을 품고 있는 멘티들과 함께 필드를 달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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