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에 대한 역사주의 비평

by 무기명
목차

1. 들어가는 말

2.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에 대한 역사주의 비평

2-1. 토지개혁

2-2. 지주 계급의 몰락

2-3. 남성우월주의사상의 변모

3. 나가는 말


2-1. 토지개혁

북한의 토지개혁과정에서 토지의 사유권 보장을 강조하였다. 농민들이 토지개혁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극복하기 위하여 ‘조선의 농업제도는 지주에 속하지 않은 농민의 개인소유, 농민경영에 의거한다’, ‘몰수한 토지는 모든 농민에 무상으로 영구소유로서 분여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선전활동을 강화하였다. 그것은 당시 일반 농민들의 생각이 ‘어떻게 남의 땅을, 그것도 자신의 생활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지주의 땅을 빼앗아 무상으로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정서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김경호(2005), 「北韓土地改革의 特徵에 관한 考察」, 『土地法學』, 한국토지법학회, 137쪽 ) 반면 이 우려와 같이 자신만의 땅이 생긴다는 설렘은 숨길 수 없었다.

이제 토지개혁이란 게 실시되면 농사꾼에게 거저 논밭을 나눠준다는 말은, (…) 그렇지만 그게 도시 미덥지가 않은 것이었다. 땅을 거져 주다니? 세상에 어디 공짜가 있단 말이냐.(51쪽)

그러나 북한토지개혁은 대중동원과 선전활동에 치중하는 노선이라 할 수 있다. 즉 해방 후 조직된 농민조합과 이를 바탕으로 한 농민동맹을 총동원하여 대중시위와 대중선전, 군중심판의 노선을 취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농민들에 대한 계급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다. (박동삼(1991), 「북한의 토지개혁정책에 관한 연구」, 국민대학교박사학위논문, 143-144쪽)

맨 앞에 선 사람은 감빛 양복에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 사람들이 메고 있는 것들이 쟁기인 것도 알 수 있게쯤 됐다. 삽과 쇠스랑이 많았다. 낫을 멘 사람도 있었다. 이 낫만은 한 발이나 되는 막대기 끝에 잡아매어져 있었다.(109쪽)
농민대회는 소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 여기저기서 쟁기가 올라왔다. 그런데 그 대개가 오늘 각 동네에서 농민들을 인솔해가지고 온 낯선 공작대원들이었다. (…) 좀 더 많은 쟁기가 대번에 올랐다. 보아하니 모두 쟁기를 드는 바에는 쥐뿔 나게 자기가 늦게 들 필요가 무어냐는 듯했다. (…) 사람들의 얼굴에 점점 놀라움과 겁먹음 빛 대신에 어떤 알지 못할 살기가 떠돌았다.(110-113쪽)

소작인이었던 농민들은 토지개혁의 소식을 처음에 들었을 때 ‘거져 주는 땅이 세상에 어딨냐’는 등 자신이 땅을 가져도 되는 듯한 의심을 먼저 했다. 하지만 드러내지 못한 설렘은 품고 있었다. 이렇게 소심했던 농민들은 농민대회를 통해 수동적으로 눈에 살기를 띠게 된다. 이로써 북한토지개혁이 의도했던 대로 농민들은 지주와의 무언의 벽을 허물게 된다.

윤주사의 한 팔을 어느새 곱실이 아버지의 손이 와 붙들었다. (…) 다음 순간 남은 한 팔마저 미륵이형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 잠시 두 사내는 주춤했다. 사실 자기네가 이 윤주사에게 이렇게 손을 대서 되는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닌가. 그러나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143쪽)

1946년 3·1 운동 27주년 기념행사를 기점으로 절정에 도달하였다. 이날에 북한의 전 지역에서 낫과 호미를 맨 300여만 명의 농민들이 토지를 요구하며 대중적 시위를 전개하였다.


2-2, 지주 계급의 몰락

해방 후 북한 정권은 북한지역에 민주주의·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제 잔재세력과 봉건 세력이 청산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로써 농민들을 봉건적 착취에서 해방시킨다는 목적이었다. 해방 직후 북한지역의 토지개혁의 배경으로 지주 계급의 피해가 얼마만큼 있었는지 잘 드러내기 위해 당시 토지소유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성욱(2017)에 따르면 1943년 말 통계에 북한지역의 총경지면적은 1,982,431정보인데, 그 중에서 총경지면적의 58,2%에 해당되는 1,154,833정보가 전체 농가 호수를 기준으로 하면 대략 4%에 불과한 지주의 소유였다. 이 중에서 논의 72,4% 및 밭의 53,8%가 지주의 소유였던 것이다. (김성욱(2017), 「통일 후 북한 토지개혁 과정에서 특수문제」, 토지법학)

이런 막대한 영향력이 있었던 지주를 몰락하기 위해 북한의 토지개혁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토지개혁과 같이 계급정책을 구사하였다. 북한에서 계급정책은 반농과 고농을 단결시키고 중농과 동맹하여 지주와 투쟁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을 적게 만들기 위해 부농을 중립화시켜 청산하지 않았다. 이처럼 지주의 힘은 무력해졌다. 그리고 공공의 적이 되었다. 『카인의 후예』에서는 도섭영감과 김의사에 말과 행동을 통해 지주인 박훈이 겪는 당시 압박감이 드러난다.

도섭영감은 아직까지 박훈네 식모살이를 하는 오작녀가 못마땅해 폭력을 가한다. 그러나 삼득이가 이를 제지하며 폭력 사태는 중단된다.

저놈의 새끼놈들이 아직 철이 없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연놈 같으니라구. 이대로 옛 지주한테 붙어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코다칠 것도 모르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45쪽)


남이 아버지가 살해된 후, 초상집에서 해방 전에는 지주였던 김의사가 박훈에게 다가와 자신의 토지개혁에 관한 생각을 피력한다.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일수록 값없이 거저 얻게 매련이라구 생각하는데? (…) 우리에게는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될 낭식 문데는 어떤가? 그것을 만든 사람은 굶주리고, 그것을 만드는 일과는 아무 상관두 없는 놈들이 배불리 먹구 뚱땅거리는 형편이 아닙니까? (…) 그래서 나는 이번 토디개혁이 실시되기 전에 얼마 안 되는 농토디만 솔선해서 바탰습니다.” (…) 거기에는 웬 낯선 청년 둘이 앉아 있었다. 공작대원으로 나와 있는 청년들일 것이었다.(53-54쪽)

이러한 지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기피함을 넘어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박훈 가문과의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었던 도섭영감의 극단적 변화를 통해 당시 시대상 지주들이 느꼈을 만한 토지개혁의 압박감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공포감 또한 드러난다. 이로써 지주들 사이에서도 현실에 순응해 자신의 농토를 포기하고 지주와의 적대감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3, 남성 우월주의 사상의 변모

김희정(2006)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은 관습이나 제도 등의 틀을 통해 수천 년 동안 계승되고 내면화되어 왔다. 남성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여성은 남성에 소속된 가정 내에서의 역할이 강조된다. 따라서 남성은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인 것으로 특성화되어 버렸고, 또 그래야만 올바르고 가치 있는 삶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황순원 소설은 이러한 일반적인 관념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희정(2006), 황순원 소설에 나타나는 여성상 연구 ―『별과 같이 살자』, 『카인의 후예』, 『일월』, 『움직이는 성』을 중심으로―, 군산대학교 대학원, 14쪽)

먼저 『카인의 후예』에도 당시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내재해 있는 장면이 나타난다. 오작녀의 어머니와 도섭영감의 관계는 특히 더 그러하다. 오작녀와 오작녀의 어머니가 도섭영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남녀 관계의 수직성이 잘 드러난다. 더 나아가 몇몇 사람들이 이 관계 속에서 공포감이라는 감정까지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방에는 어머니 혼자뿐이었다. 남폿불 앞에 동그마니 앉아 바느질감을 잡고 있다가 방문 여는 소리에 놀라는 눈을 들었다. (…) 어머니는 말소리마저 무엇을 염려하고 겁내하는 빛이었다. 그게 요새 와서 더 심해진 것 같았다. (…) 빽빽한 바위 밑 같은 남편의 그늘이 그리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 오작녀 어머니의 손이 가늘게 움직였는가 하자, 손은 그대로 있는데 바느질감만이 무릎에서 흘러 떨어졌다. “가만!” 그러고는 떨리는 손길이 딸의 팔을 붙들며 나직한 말로, “아바지다!” (…) 수십 년 같이 살아오는 동안, 이 여인은 이처럼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남편의 인기척을 알아듣는 것이었다.(13-16쪽)

반면 당시 시대상, 오작녀 어머니와 도섭영감과는 다르게 『카인의 후예』에 등장하는 박훈은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반해 오작녀는 적극적이고 활기찬 모성지향적인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작녀가 발진티푸스병에 걸려 앓고 있을 때 박훈은 그를 간호하며 오작녀에게 가락지를 준다. 그리고 자신의 집 또한 물려주려고 한다. 그 때 오작녀는 그의 남편에게는 드러내지 않았던 젖가슴을 드러내게 된다.

“선생님, 왜 절 살레놨습네까? 죽는 대루 내버려두디 않구, 왜 살레놨습네까?” 뜨거운 입김과 함께 오작녀의 맨가슴이 훈의 가슴 가까이서 들먹여댔다.(105쪽)

여성의 젖가슴은 모성애의 상징이다. 황순원 소설의 모성적 이미지는 각박한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삶을 영위하게 하는 근원적 생명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정수현(2003), 「황순원 단편소설의 동심의식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36쪽) 박훈이 숙청당하기 일보 직전 오작녀는 개털오버청년과 공작대원들 그리고 농민들에 대항한다.


“이 집은 내 집이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누구 하나 이 집에 손을 못 대요!” (…) “우리는 부부가 됐이요!”(131-132쪽)

오작녀는 남편이 이미 있었다. 당시 시대상으로 오작녀가 이미 있는 남편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고 오작녀의 앞으로의 삶에 크나큰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위와 같이 오작녀가 박훈을 위해 희생한다는 점이 모성애적 사랑을 통해 드러난다. 이런 오작녀의 자기희생적 사랑은 큰아기바윗골의 뻐꾸기 전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오작녀의 귀에 문득 어떤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그네의 입에서 절로 말이 새어나왔다. “아, 큰애기바윗골 뻐꾸기……” (…) 이젠가 이젠가 해도 뻐꾸기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작녀의 물기 어린 눈에 점점 꿈꾸는 듯한 빛이 더해지며, “이제 들레올 거야요. 어젯밤에두 울었이요. 요새는 매일같이 울어요. 아마 올봄엔 진달래가 녜년에 없이 많이 필래는가 봐요.”(227-228쪽)

위의 구절처럼 오작녀의 마음속에서 이 전설의 내용과 완전히 동일시되어 있다. ( 박혜경(2001), 『황순원 문학의 설화성과 근대성』, 소명출판, 15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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