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1. 토지개혁
이제 토지개혁이란 게 실시되면 농사꾼에게 거저 논밭을 나눠준다는 말은, (…) 그렇지만 그게 도시 미덥지가 않은 것이었다. 땅을 거져 주다니? 세상에 어디 공짜가 있단 말이냐.(51쪽)
맨 앞에 선 사람은 감빛 양복에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 사람들이 메고 있는 것들이 쟁기인 것도 알 수 있게쯤 됐다. 삽과 쇠스랑이 많았다. 낫을 멘 사람도 있었다. 이 낫만은 한 발이나 되는 막대기 끝에 잡아매어져 있었다.(109쪽)
농민대회는 소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 여기저기서 쟁기가 올라왔다. 그런데 그 대개가 오늘 각 동네에서 농민들을 인솔해가지고 온 낯선 공작대원들이었다. (…) 좀 더 많은 쟁기가 대번에 올랐다. 보아하니 모두 쟁기를 드는 바에는 쥐뿔 나게 자기가 늦게 들 필요가 무어냐는 듯했다. (…) 사람들의 얼굴에 점점 놀라움과 겁먹음 빛 대신에 어떤 알지 못할 살기가 떠돌았다.(110-113쪽)
윤주사의 한 팔을 어느새 곱실이 아버지의 손이 와 붙들었다. (…) 다음 순간 남은 한 팔마저 미륵이형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 잠시 두 사내는 주춤했다. 사실 자기네가 이 윤주사에게 이렇게 손을 대서 되는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닌가. 그러나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143쪽)
2-2, 지주 계급의 몰락
저놈의 새끼놈들이 아직 철이 없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연놈 같으니라구. 이대로 옛 지주한테 붙어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코다칠 것도 모르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45쪽)
2-3, 남성 우월주의 사상의 변모
방에는 어머니 혼자뿐이었다. 남폿불 앞에 동그마니 앉아 바느질감을 잡고 있다가 방문 여는 소리에 놀라는 눈을 들었다. (…) 어머니는 말소리마저 무엇을 염려하고 겁내하는 빛이었다. 그게 요새 와서 더 심해진 것 같았다. (…) 빽빽한 바위 밑 같은 남편의 그늘이 그리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 오작녀 어머니의 손이 가늘게 움직였는가 하자, 손은 그대로 있는데 바느질감만이 무릎에서 흘러 떨어졌다. “가만!” 그러고는 떨리는 손길이 딸의 팔을 붙들며 나직한 말로, “아바지다!” (…) 수십 년 같이 살아오는 동안, 이 여인은 이처럼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남편의 인기척을 알아듣는 것이었다.(13-16쪽)
“선생님, 왜 절 살레놨습네까? 죽는 대루 내버려두디 않구, 왜 살레놨습네까?” 뜨거운 입김과 함께 오작녀의 맨가슴이 훈의 가슴 가까이서 들먹여댔다.(105쪽)
“이 집은 내 집이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누구 하나 이 집에 손을 못 대요!” (…) “우리는 부부가 됐이요!”(131-132쪽)
오작녀의 귀에 문득 어떤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그네의 입에서 절로 말이 새어나왔다. “아, 큰애기바윗골 뻐꾸기……” (…) 이젠가 이젠가 해도 뻐꾸기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작녀의 물기 어린 눈에 점점 꿈꾸는 듯한 빛이 더해지며, “이제 들레올 거야요. 어젯밤에두 울었이요. 요새는 매일같이 울어요. 아마 올봄엔 진달래가 녜년에 없이 많이 필래는가 봐요.”(227-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