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물의 장점은 익숙했던 세계로 짧은 시간에 다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읽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깊은 상처’는 이미 세 편의 에피소드를 읽었던 타우누스 시리즈 중 한 권이었다. 책을 펴고 10장 정도 읽으니 낯익은 지명과 등장인물들이 금방 다시금 소설 속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번 편에서도 프랑크푸르트 인근 소도시 켈크하임을 중심으로 피아와 보덴슈타인 형사가 곳곳을 누비면서 사건의 진상을 뒤쫓는다.
사건은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 생존자인 90세 노인이 집에서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손을 뒤로한 채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전통적인 나치식 처형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후에 독일인들과의 화해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한 인물이었다. 사회적 명사의 죽음에 타우누스 지역은 물론이고 독일 중앙정부도 발칵 뒤집힌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지만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던 중에 비슷한 연배의 노인 두 명이 같은 수법으로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된다. 조사가 진행되고 피해자들이 모두 칼텐제 가문이라는 돈 많은 귀족 집안과 인연이 있음을 알아낸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칼텐제 가족의 수장인 베라 칼텐제를 만나 친구들의 죽음을 알린다. 그러자 80대 노령의 그녀는 60여 년 전 전쟁 막바지에 자신이 고향에서 겪어야 했던 일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사건 발생 시점은 2000년대 현대이지만, 살인의 동기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중에 조그만 마을에서 벌어졌던 일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나치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 국가나 역사적 시각에서 공부하고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국민 개개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지켜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전쟁이 평범한 일상을 참혹한 핏빛으로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극한 상황이 빚어내는 암울한 상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항도 못하고 총살을 당해도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그런 생지옥 속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날의 기억은 ‘깊은 상처’가 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버렸다.
이러한 이야기의 모티브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시기에 부정한 방법으로 많은 부를 쌓고, 이웃과 친구에게 커다른 고통을 안겨주었던 인물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정체를 감추고 우리 사회 지도층이나 부자로 잘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또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품고서 삶을 살아가는 피해자들 역시 많을 것이다. 이러한 개개인들의 사연은 모두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시한폭탄들이다. 읽으면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될지 내내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한 가볍지 않은 소재를 소설 속에 녹여내서 한편의 극적인 드라마로 엮어낸 작가의 역량에 다시 한번 놀랐다.
다소 길고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지만, 넬레 노이하우스는 천부적인 이야기꾼답게 지루하지 않게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이끌어 나간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연을 토해내서 소설의 이음새는 단단해지고 내용은 풍성해졌다. 또한 속도감 있는 장면전환으로 마치 미드를 보는 듯이 흐름이 경쾌했다. 값비싼 가구로 꾸며진 유서 깊은 저택에서 용의자와 대화를 하는 장면 다음에는, 피가 흥건한 아파트에서 내장이 드러나고 안구가 적출된 피해자가 발견된다. 명함을 내밀면서 속으로는 상대방의 알몸을 상상하는 연회장을 둘러보다가도, 다음에서는 담배연기 자욱한 경찰서 회의실에서 반장이 팀원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독어독문과를 다닐 때 넬레 노이하우스처럼 정말 좋아하는 현대 독일 작가를 만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랬다면 독일어와 소설과 문학에 대해서 좀 더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남는다. 그 시절에 넬레를 알았더라면 당연히 독일어 원서로 그녀의 작품 읽기를 도전했을 듯하다. 스무 살의 나에게 괴테와 발터 벤야민 등은 너무 어렵고 지루했다.
시간은 돌고 돌아 60여 년 세월 뒤에 엄마는 젊은 시절 비극의 장소에서 자신의 아들을 되찾는다. 머리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부모와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열 살배기 여동생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던 곳이다. 아들은 어느새 노년의 남자가 되었지만 노파에게는 아직도 아기였다. 긴 세월이 지나서도 그녀는 아들을 위해 다시 한번 자신을 희생한다. 그제서야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면서 눈을 감는다. 범죄소설의 재미와 속도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전쟁과 기억이 얼마나 끔찍한 삶을 만들어 내는지 여러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