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읽고.

by 고블린 연구소

202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생활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인류는 백신 접종, 감염자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병의 확산을 막아내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염병의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위드 코로나’라는 현실적인 대응책으로 태세 전환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바이러스 기반의 전염병 유행을 코로나19 창궐 몇 년 전에 예언한 책이 있었다.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인 데이비드 콰먼(David Quammen)의 Spillover로 번역서의 제목은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이나 영국 BBC를 시청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감염병의 원인체를 연구하는 미생물학 분야는 딱딱해지기 쉬운, 어쩌면 필연적으로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바이러스와 세균 이야기를 긴박한 전개가 펼쳐지는 과학 다큐멘터리처럼 전 세계를 무대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현장감 있게 서술했다. 예를 들면, 2003년 홍콩에서 온 일흔여덟 살 노파가 토론토 시민 수백 명을 감염시키면서 시작되는 사스 바이러스 유행 초기 장면부터, 1908년 카메룬 남동부 정글에서 침팬지로부터 인류에게 최초로 에이즈 바이러스가 전해지는 순간까지 독자에게 전해준다. 미육군 감염병 연구소 앞의 편의점 딸이 성장해서 바이러스 학자가 되거나, 에볼라 바이러스를 다루다가 주삿바늘에 손을 찔려 두려움 속에 몇 주간 격리 생활을 해야 했던 연구자의 사연등 드라마 같은 스토리도 곳곳에 가미해서 지루함을 덜어주었다.


책은 모두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을 빼면 각 장마다 주인공 격인 병원체가 등장한다. ‘창백한 말’에서는 20여 년 전에 호주 말 생산 농가에서 말과 종사자를 감염시켰던 헨드라 바이러스에 대해 다루고 있고, ‘열 세 마리의 고릴라’에서는 아프리카 콩고 등지에서 치명적인 사망률을 나타냈던 에볼라 바이러스를 조명한다. ‘쥐농장의 저녁 식사’에서는 사스 바이러스의 보유숙주를 쫓아서 중국 광둥성의 가축시장을 찾아가고, 이 밖에도 라임병, 앵무새병, Q열등 세균에서 비롯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의 현주소도 알려준다. 물론 말라리아, 독감, 에이즈 등 현재까지도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감염병도 빠뜨리지 않고 다룬다.


데이비드 콰먼은 그동안 인류에게 나타나 커다란 인적, 경제적 손실을 주었던 전염병들의 원인과 유행 과정,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과제를 제시한다. 여러 가지 감염병이 설명되지만, 그 병원체들이 인류 사회에서 창궐하게 된 이유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것은 병원체가 인간을 공격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바이러스나 세균이 조용히 살고 있던 공간에 침입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인류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던 바이러스나 세균은 이전에는 없던 것이 새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생태계 어딘가에서 사람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오랫동안 존재했었는데, 탐욕스러운 욕심으로 자연을 개발하고 주거지를 넓혔던 인간들이 그들의 공간 속에 발을 들인 것이다. 새로운 숙주를 접하게 된 병원체들은 호모 사피엔스로의 종간전파spillover를 시도하고, 그중 소수는 성공적으로 인류의 혈액과 세포 속에 안착하여 질병을 일으켰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지구 곳곳에서 전염병의 원인을 밝히고, 발병한 병원체들을 이겨내기 위해 분투하는 연구자와 의료진들의 땀과 노력이었다. 병원균 숙주를 찾아 나서는 연구팀은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사지(死地)에 스스로 들어가기도 하고, 밀림 깊은 곳에서 노숙을 해가며 몇 날 며칠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는다.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감염자에게 삽관을 하다가 병에 걸리는 의료진도 있고, 원인을 찾기 위해 죽은 동물을 부검하다가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수의사도 볼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감염병 연구와 대응에 나선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인간은 전염병에 대해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더 많다.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온통 깜깜한 밤에 희미한 불빛이 반짝이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 인류가 병원체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이다. 저자는 인간이 어쭙잖은 지식으로 병원체와 그 기원이 되는 자연을 정복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그동안 벌였던 어리석은 행동을 뒤돌아보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거대한 밀림과 야생 생태계를 침입하여 파괴하고, 그곳에 살고 있던 야생동물들을 죽이고 고기를 먹어치웠다. 움직이기도 힘든 좁은 우리에 빽빽하게 동물을 채웠으며, 배설물이 그 아래에 있는 동물들에게 그대로 떨어지는 환경을 방치했다. 가축에게는 경제논리를 앞세워 무분별하게 항생제를 퍼부어서 세균의 내성 증가를 일으켰고, 보기에 이색적이라는 이유로 다른 대륙의 숲속에 살고 있던 조류나 파충류를 집 안에 들였다.


짧은 역사 동안 인간은 이 땅에서 가장 번성한 대형동물이 되었다. 책에 따르면 전 인류의 개체 수는 70억을 넘어 계속 증가하고 있고, 90억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돌이켜 보면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늘어났었던 종은 여지없이 자연의 법칙에 의해 숫자가 적정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이는 호모 사피엔스도 피할 수 없다. 더이상 춥지 않은 겨울은 전염병 매개체인 해충의 서식 지역을 대폭 넓혔고, 대규모 감염병의 유행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현재 코로나19는 그저 자연이 보내는 경고 메시지 정도 일 수 있다. 인간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더 큰 대가를 치뤄야 할 수도 있다. 이 책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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