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피제
3월의 첫 평일은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입학식이 진행된다. 초등학교 입학식의 경우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부모님이 교사라면 자녀가 입학식을 하더라도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이 더 중요한가? 가정이 더 중요한가? 고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딜레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평생 한 번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직장에서는 눈치가 보인다.
자녀와 다니는 학교가 같은 곳이라면 그나마 낫다.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경우 자녀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사전에 막는다. 진학인 예정된 아이가 있으면 파악해서 보고한다. 혹시 생길 수 있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나의 아이를 챙겨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피제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쳐 있어 왔다. 가족이나 친족들 간에 함께 있으면 생기는 문제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족들의 문제를 감싸고 처리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하고 공평한 처리를 원한다. 남에게는 예리한 잣대를 들이대고 자신에게는 관대하면 정의롭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간다. 서로의 합의를 통해 규칙을 설정한다. 지켜지지 않는 규칙이 있다면 법으로 강제한다. 사회가 발전할 수도록 더욱 규제는 많아지고 세진다. 그래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규칙이 있음에도 지키지 않고, 법이 있는데 무시한다면 그 사회는 지속되기 어렵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우리는 정의로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원한다. 내가 피해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를 평가할 때에도 남들과 같은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아야 한다.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한 이유다. 메타인지가 필요한 이유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데도 유리하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결론 >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잘하는 분야가 있고 잘 모르거나 부족한 분야도 있죠.
서로의 능력을 조금씩 나누면서
사회를 이루어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