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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Jan 25. 2024

나이 마흔둘에 다시 대학에 갔다.

쭈뼛한 마음으로 대학 강의실 뒷문을 열고 맨 뒷자리에 앉았다. 강의실 안에서 담소를 나누던 대학생 몇몇과 눈이 마주쳤다. 이십 대 학부생들이 수업을 듣는 이 공간에서 사십 대 학생인 나는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였다. 내가 왜 이 공간에 앉아 있게 되었는지를 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니 호기심 어린 눈빛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90년대 후반, 강의실에 처음 보는 얼굴 몇몇이 앉아 있었다. 우리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이들이었다. 동기들과 저들이 누군지에 대해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눴었다. 한 동기가 선배에게 들었다면서 예전에 학생 운동하다가 학교를 잘렸었는데 이번에 복학이 되어서 다시 학교로 나올 수 있게 된 고학번 선배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20년 후, 어떤 사정으로 우리들의 공간에 들어오게 된 거지에 대한 의문의 대상이, 이제는 내가 되어 있었다.


나이 마흔둘에 다시 대학에 갔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가 다시 복학한 선배'와 같은 서사는 호기심과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겠으나, 내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학부 전공과 대학원 전공이 일치하지 않아, 대학원 수업과 학부 수업을 병행해야 했다. 2018년 한 대학의 미술사 대학원 면접시험을 봤다. 학부 전공이 역사 교육인데, 대학원에 와서 처음 공부하는 미술사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학생의 마음으로 열심히 잘 따라가 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대학원 수업뿐 아니라, '선수 과목'이라 해서 학부 수업 세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입학을 허가받았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이 듣는 <한국도자사> 수업 교실에 앉아 있게 되었다.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한 명 한 명 출석을 부르셨다. "OOO", "네"하고 답하면서 손을 들었다. 내 대답을 들으시고 교수님은 잠깐 멈칫하셨다. 내 또래의 교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이 많은 학생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잠시 고민하시던 교수님은 다시 나를 "OOO 선생님"이라고 부르셨다. 최대한 명랑하고 예의 바르게 답해야지 생각하며 다시 "예!"를 외쳤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의 책상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교수의 강의 내용을 대부분 받아치며 한글창에 필기하고 있었다. 강의실에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미처 노트북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대신 며칠 전 마트 문구 판매대에서 산 두꺼운 스프링 노트에 부지런히 필기를 했다. 뒤늦게 한글을 배우러 세상에 나온 할머니처럼 부지런히 받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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