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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곤 Jul 24. 2024

주머니에 손수건 한 장

산문집 <그날의 아이스아메리카노 속 얼음은 따뜻했다>를 출간한 후 독자를 만났을 때입니다. 내가 서평을 간단히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상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잔잔하게 흐르는 글의 전개, 그리고 간결한 문체에 페이지를 술술 넘길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자 내가 “인상 깊었던 산문이 있다면 어떤 글이었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수건 한 장요. 어린 시절 때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학교에 갔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좋았어요.”



화장지 나오는 소리.


쏙쏙쏙....


"주머니에 손수건 한 장"은 어떤 날에 공중 화장실 세면대 옆 벽에 있는 화장지걸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기대며, 아내가 정성스럽게 다리미질해서 건네준 손수건을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내면서,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을지도 모를 나무와 숲, 자연, 그리고 사람들을 떠올리며  산문입니다.


만 원이 있다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 햄버거 세트나 해장국으로 식사를 할 건가요? 아니면 주일날 교회에 가서 헌금을 하실 건가요? 요즘에는 돈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물가도 올랐지만 돈의 가치도 떨어졌다는 방증인지도 모르지요. 저는 누가 돈 만원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물어본다면 손수건을 사겠다고 할 것입니다.


요즘은 공중화장실에 가면 볼일을 보고 다들 휴지로 손을 닦습니다. 누구는 한 장을 어떤 이는 몇 장을 꺼내 사용하지요. 휴지 케이스 위에 ‘한 장씩 꺼내 사용하십시오. 환경을 보호합시다.’라는 문구가 버젓이 붙어 있는데 말이죠. 물론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일 것입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었지요.


손수건은 한때 우리에게 익숙했던 물건입니다. 예전 어른들의 호주머니에 또는 핸드백에 늘있었던 물건입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에는 핸드백에서 고운 손수건을 꺼내는 여성도 멋진 손수건을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내는 남성도 보기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친구 생일에도 이것을 선물하기도 했지요. 여름에 외출하는 부모님들에게는 필수품이기도 했습니다. 무더위에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한 손으로는 그것이 머리에서 떨어질까 꼭 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무명천으로 만든 하얀 손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일상에서나 영화나 드라마 영상 속에서도 볼 수 있던 정겨운 광경이었습니다. 제가 20대 때는 여자친구가 삐쳐서 울거나 하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백화점에는 손수건 선물코너가 따로 있었습니다. 또 스승의 날 기념품이나 부모님 생일 선물을 위해 그곳을 찾았었지요. 어느새 보기 힘들어졌지만요. 동네 대형마트에 가서도 찾기 어려워져 주로 시장이나 전문점에 가야 살 수 있는 물건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저는 예전에 건강을 위해 추운 겨울에 집 근처 동네 공원을 돌다가 그곳에 있는 나무를 가슴에 안고 몇 분 동안 있기도 했습니다. 공원 길 한쪽에 길게 늘어서 있는 나무들 중 가장 튼튼하게 생긴 녀석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안녕 잘 있었어? 고마워!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줘서.”


요즘은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 녀석은 아직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옮겨지지 않는 한 그곳을 지키겠지요. 혹시 모를 일이지요.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고마운 친구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휴지 조각이 나무의 희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실 테죠. 3년 전에 코로나가 온 지구를 덮칠 때 우리는 환경보호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에도 인간의 편리성 추구로 인해 나무들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그리고 식당에서도 공중화장실 세면대 앞에서도 말입니다.


이제 음식도 인스턴트식이 유행합니다. 음식점에 가도 주인장의 정성이 담긴 손을 거치지 않고 바로 테이블에 올라오는 음식이 많아지고 있지요. 그만큼 편리성을 추구합니다. 그 대신 깊은 맛은 없지요. 사람과의 만남은 어떠할까요. 탄산음료를 마시듯 순간적인 맛에 끌려 만나다가 식으면 금세 멀어지는 경우가 있지요. 직장에서도 어디에서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정에 목말라하는 경우도 생기지요. 사람 관계에서 쉽게 지치기도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서로의 깊은 정을 나누고 슬플 때나 힘이 들 때 손수건을 건넬 수 있는 관계를 갖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손수건은 일상에서 여러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눈물도 땀도 닦아주고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훔칠 때도 사용했던 물건이었지요. 옛날 초등학교 입학식 때 코흘리개 꼬맹이들의 가슴에 달린 손수건은 명불허전 정겨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코흘리개 개구쟁이도 손수건도 시간의 저편으로 흘러가 버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인생은 돌고 돈다지요. 당신의 호주머니 안에 따뜻한 정(情)이 담겨 있는 손수건 한 장을 넣어보는 것은 어떠할는지요. 그러면 옛날 코흘리개 꼬맹이들이 가슴에 달았던 그 정답던 손수건을 공중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자주 볼는지요.



지금 저는 집 근처 한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창가 너머로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합니다.


어제부터 내린 비....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린 날이면 어김없이 바지 뒷주머니나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비에 젖은 옷깃을 닦곤 했습니다.


요즘은 어떨까요?

그러한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https://youtu.be/bE8 NRQ-M4xg? si=48 TmNQGRY3 vWfE1 E


https://naver.me/Fw70zF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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