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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곤 Jul 17. 2024

그날의 아이스아메리커노 속 얼음은 따뜻했다

하루는 친구와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한쪽에서는 달그락, 달그락…

한쪽에서는 타다닥, 타다닥…


하는 소리가 카페 안을 울리는데, 그날따라 내게 다가오는 결이 달랐다. 그래서 가게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더니 아이스아메리카노 속 얼음들이 서로 툭툭 치며 대화하는 것 같았다.


마치 게 “우리 좀 봐!” 하고 말을 건네는 것같이.


순간, 평소에 그냥 스치며 지나갈 수 있었던 소중한 것들이 떠올랐다. 마치 영화 필름이 스쳐 가듯이. 그러면서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을지도 모를 소중한 것들이 부유한다. 가족, 친구, 이웃, 자연, 먹거리 등에, 그리고 나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일본에서 사람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차와 다과를 먹을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이따다끼마스(잘 먹겠습니다.)”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는 예(禮)를 건네고, 우리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희생하는, 어느새 우리가 익숙해져 버렸을지도 모를 소중한, 모든 생명체에게 보내는 감사의 인사일 것이다.



아내는 저녁 시간이 되면 식성이 까다로운 장모님에게 맞추느라 메뉴를 정하기 바쁘다.

“엄마 저녁 뭐 해줘?”

아내가 말했다.

“글쎄…? 뭐 먹을까?”

장모님이 말씀했다.

“오늘은 생선 구워줄까?”

아내가 다시 말했다.

“???…”

장모님이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아무런 대답이 없자 아내가 다시 이렇게 말한다.

“그럼 고기 구워줘?”

고기도 별로 내키지 않으신 듯 장모님은 아내의 얼굴만 계속 쳐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리신다.

“음…….”

그러자 이제 익숙해진 친정엄마의 고민이 이어지자 아내가 이렇게 갈무리한다.

“그냥, 고등어 구울게.”

“응, 그래.”


끼니마다 신경이 가는 장모님과는 다르게 아무것이나 잘 드시는 장인어른은 아내의 손이 전혀 필요가 없다. 장모님과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건강에 대해 아내와 얘기를 시작했다 "장인어른의 건강 비결은 무엇일까?"

내가 물었다.

“글쎄. 뭘까? 아마 닭을 자주 드셔서일거야.”아내가 말했다.

“그런가? 하긴 닭고기에 필수 아미노산이 많다고 하지.”

내가 다시 말했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널리 애용되는 음식인 닭고기는 다른 고기류보다 기름이 적어 혈관 건강과 면역력 유지에 좋아 장수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언젠가 내가 수술 후에 병원에 갔을 때 담당의도 치킨이 다른 것보다 기름기가 적다고 추천했다. 

“교수님, 제가 돈가스 같은 것을 먹어도 될까요?” 

내가 물었다.

“치킨 돈가스는 괜찮아요.”

그가 말했다.


오래전 한동안 건강을 위해 나는 기름기가 없는 것을 먹어야 했다. 동물성기름은 몸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가슴살이 최고였다. 양배추에 간장양념을 한 닭가슴살은 호박고구마, 팥빵과 함께 지금도 나의 건강식품이다. 그리고 아내와 딸을 외국에 보내고 기러기 생활할 때 혼자 요리하기에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편했다. 쉽게 배고프지도 않았다. 퍽퍽한 닭가슴살을 잘 먹는 습관이 생긴 덕인지 지금은 아무 음식이나 주는 대로 잘 먹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에 감사를 먹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 생명체이다. 닭, 소, 돼지, 오리, 배추, 오이, 냉이, 호박, 고구마, 콩, 고등어, 멸치, 사과, 배, 귤, 딸기 등 셀 수 없다. 그들의 소리 없는 희생 없이 우리는 살 수 없다. 그들에 감사할 이유일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 어머니 문상을 다녀왔다. 그 뒤 그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렀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는데 계산대 너머의 싱크대에서 사람들이 마시고 간 커피잔 속 얼음이 버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날따라 왠지 유별나게 그들이 안쓰럽게 다가왔다. 아이스아메리카노 속의 얼음들이 그 역할에 수명을 다하면 가차 없이 배수구 안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친구 어머니의 문상에 다녀오고 나의 존재에 대한 감사의 여운 때문일까.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그들의 희생에 마음이 따스했다.


어릴 적 팥빙수를 먹으러 빙수 가게에 가면 주인아저씨가 빙수기 위에 두꺼운 얼음을 놓고 기기 옆에 달린 둥그런 손잡이를 휙휙 돌리면 얼음덩어리는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그럼 눈처럼 하얀 슬라이스 얼음이 그릇 안에 소복하게 쌓이고, 맨 위에 팥앙금을 가득 올려 주면 그 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커피잔 속에서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며 주인들의 귀를 호강시켜 주기도 하는 그들. 와작와작 깨물어 흔적을 지워버려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져도 말없이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헌신하는 그들이 따스하게 다가온 날이다.


오늘 만난 그들과 따스한 이별을 한 후 싱크대 홀을 지나 하수구를 거쳐 물줄기를 이루어 냇가로, 호숫가로, 그리고 바다로 흐르고, 다시 우리의 투명 유리잔과 다시 만날 때처럼.


열린 마음을 꿈꾸며…



마음의 온도를 올리는 일상의 작은 온기를 담은 산문집


독자의 삶을 강요하지 않는 메시지로 잊혀가는 아날로그 감성을 되새기다



하루는 카페에서 음료를 차갑게 유지하는 역할을 다한 얼음이 버려지고 있는 광경에서 제 한 몸 희생하고 끝내 하수구로 흘러가는 얼음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날의 아이스아메리카노 속 얼음은 따뜻했다'는 한국인이 많이 찾는 시원한 음료의 대표주자 아이스아메리카노에서 따뜻함을 발견하는 역설입니다. 자신에게 더 집중하면서 오히려 주변을 둘러볼 줄 모르는 사회로 심화되는 냉정한 세상에서 따뜻함과 여유로움을 찾고자 했습니다. 인스턴트식품의 가벼운 맛과 같은 삶에 필요한 것은  다정한 손길을 거친 깊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꾹꾹 눌러쓴 편지를 보내야만, 수첩에 고이 적은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눌러야만 연결되었던, 정성을 들인 관계가 떠오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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