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딸이 독립했다. 그전까지는 장인장모님을 모시며 한 지붕 아래 삼세대가 산 지 10년이 넘는다. 고관절 수술을 한 후로는 장모님의 몸이 그전만 못 해 몇 해전부터 아내와 내가 같은 날 밤새 집을 비우는 일이 거의 없다. 아내와 딸이 싱가포르에서 있을 때 기러기생활을 했던 이후로 셋이 여행을 간 적이 없는 것이다. 가더라도 아내와 딸만 둘이 가고 나는 그때마다 집을 지켰다. 그러니 아내도 딸도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가 여느 때와 다를 것이다.
화목한 가정을 보면 대부분 가족 여행을 자주 하더라. 어릴 적에 친구들 집에 가면 유독 화목한 가정이 있더라. 성인이 되어 보니 그들의 공통점이 가족끼리 여행을 자주 가더라. 휴가철이 되면 형제자매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가더라. 그래서인지 형제간 유대관계도 좋은 거 같더라,라고 내가 말하자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
저번에 모임에서 강화에 있는 펜션을 임대해 단체로 갔다 온 적이 있잖아. 그때 후로 단톡방에 멤버들이 서로 안부를 자주 묻고 그전보다 친화적으로 변하더라고. 그전까지 보이지 않게 흐르던 어색한 기류가 바뀌더라고. 다들 젊었을 때부터 알 던 사이가 아니라서 만날 때면 조심들 했거든.
그러자 내가 다시 말한다.
여행이 그런 것 같아. 하지 못했던 속내도 건네면서 서로의 마음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삶의 양념 같은 것. 그래서 힐링이 되고 그곳에서 받은 좋은 에너지가 일상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거 같아.
장모님과 어떻게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서슴지 않고 여행이라고 나는 답한다. 예전에 기러기 생활을 할 때 딸과 아내를 보러 갈 때면 장모님과 같이 싱가포르를 동행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같이 생활하며 그곳을 여행하고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좋았던 일과 서운했던 일을 가리지 않고 속내를 풀어내다 보니 서로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결혼 전부터 친했던 장모님과는 자연스레 어머니 같은 존재, 아들 같은 존재로 발전할 수 있었다. 여행이 마법을 부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3년 전이다. 코로나가 한동안 창궐할 때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코로나에 걸려 입원을 하고 휴직을 한 후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즈음이었다. 고관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해진 장모님과 앞으로 여행 갈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 아내에게 제안하여 셋이 여수를 갔다 온 적이 있다. 그 후 지금까지 장모님과 여행을 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앞으로는 긴 여행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여행은 건강할 때 부지런히 하는 것이다,라고 실감하는 요즘이다. 한 지붕 아래 삼세대가 때로는 서로 부대끼며, 하지 못했던 우리들만의 여행할 기회를 지금부터라도 더 많이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어쩌면 우리 부부가 깊게 공감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아내의 제안으로 계획한 우리들만의 여행길.
60과 퇴직 기념의 이번 길이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한동안 잊고 살았을지도 모를 가족의 소중함을 더 깊게 해 주는 마법의 공간이 되어주길 희망해 본다.
과연 그 바람의 물줄기는 내가 기대하는 곳으로 흘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