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에 없던 추억을 안고 우리는 후쿠오카에 무사히 도착했다.
곡선을 만나며 재미는 배가 되기도 하는 여행.
우리의 여행은 순탄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공항을 빠져나오니 맑은 하늘에 놀랐다. 12월 싱가포르의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오래전에 기러기 생활할 때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나왔을 때 자연이 선물하던 따스한 시간이 떠올랐다.
출발하기 며칠 전이었다.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번 여행에서 꼭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
하카타에서 유명하다는 그 장어 덮밥?
아내의 말을 듣고 인터넷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5월 초까지 자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약이 다 찼네. 도착하자마자 전화해 보자.
그래.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로밍으로 식당 예약 전화를, 도시락 와이파이로 딸은 길 찾기, 맛 집은 아내가 검색하기로 했었다. 공항에 도착하고 나는 휴대폰을 켜 그 식당에 전화를 시도했더니 신호음만 요란하게 새어 나왔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며 죄송하다는 음성녹음만 들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다시 버튼을 누르고.... 가다림을 반복하다가 가서 기다리면 먹을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입국심사장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지하철역까지 운행하는 무료버스에 오르니 10분 정도 지나자 역에 도착했다. 호텔이 있는 나카스가와바타역까지는 4 정거장만 가면 되었다. 유학 시절에 도쿄 나리타공항에서 우에노역까지 가는 데 2시간을 투자하며 왕래했던 터라 가깝고 편리함에 놀랐다.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왜 많이 찾는가에 질문에 답을 얻었다는 생각 하며 지하철에 올랐다. 와이파이 표시가 있는 곳에 트레블월넷 카드를 대면 탑승권을 구매할 필요 없이 탑승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울 지하철보다 폭은 좁았지만 내부는 깨끗했다. 앉아 있는 탑승객 중에 문고집을 읽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도 다시 볼 수 있었다. 35여 년 전 도쿄 지하철 안에서 보았던 그때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공항에서 출발해 1시간 정도 걸려 호텔에 도착했다. 여행 가방을 풀고 난 후에 딸이 하카타에 있는 장어덮밥으로 유명한 식당에 인터넷 예약을 시도한 후에 말했다.
이미 다 마감인데. 아빠가 전화 다시 한번 해봐라.
그래? 하며 나는 식당에 전화를 했지만 휴대폰에서는 여전히 안내 멘트만 나오자 내가 말했다.
안 받네. 많이 바쁘긴 하다보다.
그러자 딸이 말했다.
그럼 근처 장어덮밥집이 있나 알아볼까?
그래.
검색하던 딸이 다시 말했다.
유명한 곳이 근처에 있네. 4대째 하고 있다는 식당이래.
딸은 인터넷으로 예약이 안 된다면서 전화번호를 내게 건넸다.
‘여기는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라고 희망하며 휴대폰 버튼을 나는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나고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이었다.
여보세요. ooo의 매니저 oo라고 합니다.
여보세요. 혹시 자리가 있을까요?
몇 분이실까요?
3명입니다.
카운터 자리만 남아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잠시만요.
휴대폰을 잠시 내리고 아내와 딸에게 테이블은 없고 주방 앞 카운터 자리만 있다고 하며 “괜찮아?” 하고 묻자 그녀들은 좋다고 했다.
도착하니 식당 안 홀에는 테이블이 4개 정도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손님들이 식사 중이었다. 비어 있는 주방 앞 카운터 자리를 발견하고 우리가 식사할 곳이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매니저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어서 오세요. 조금 전에 전화로 예약하신 ooo님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우리가 오는 동안 룸 하나가 비었다며 나카스강이 보인다는 곳으로 안내했다. 전화할 때만 해도 카운터 자리만 있다고 했는데 이게 웬일이야! 하며 그의 뒤를 따라 룸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 입에서는 똑같은 단어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와우! 좋은데.
잠시 후에 매니저가 메뉴책자를 건네고 나가자 딸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보다 이렇게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곳이 좋은 거 같아.
그러자 옆 자리의 아내가 말했다.
맞아. 나도 음식 맛보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아.
오기 전부터 벼르던 유명 식당의 장어덮밥을 먹지 못하는 아쉬움을 내려놓은 아내가 메뉴책자에 있는 생맥주를 보자 딸에게 말했다.
생맥주 한 잔 시켜 같이 마실까?
그래.
테이블 위에 있는 호출 버튼을 누르자 잠시 후에 조금 전 그 매니저가 들어왔다. 딸은 장어덮밥 3개와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통유리로 된 창 너머로 조용히 너울대며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딸과 내가 휴대폰 카메라를 연신 누르고 있는 사이에 여성 직원이 맥주를 들고 들어와 테이블 위에 놓으며 말했다.
주문하신 생맥주입니다.
직원이 나가자 아내가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와우. 맛있다.
딸도 엄마의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카.... 맛있다.
장어덮밥이 나오고 나와 딸은 카메라에 담는 사이에 아내는 다시 맥주 한 모금하며 말했다.
너무 맛있다. 내가 이때까지 마셔본 맥주 중에 최고다, 하며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너울대는 미숙한 강물을 바라보며...
아쉬움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윤활유 같은 것.
굽이굽이 흘러 어머니 강에 안기는 물줄기처럼.
직선보다 곡선이 아름답듯.
예상치 못한 일에서 따스함을 만나는 여행길.
후쿠오카에 도착한 날, 그렇게, 우리는 예쁜 저녁을 먹었다.
사진: 김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