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서 추억을 보다

by 김곤

음식이라기보다 풍경을 먹었다고 하기에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 그곳을 나오자 박명의 시간이 다가올 즈음이었다. 우리와 우리를 이어주는 다리를 건널 때였다.


저 멀리서 노을이 온다.

저녁을 약속하는 노을이 하늘을 감빛으로 물들인다.

따스하다.

예쁘다.


나도 딸도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집 앞 공원에서 박명에 산책을 할 때면 만나던 따스한 노을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생각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여행길에서 만나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 아닐까. 시간은 우리가 의도한 대로 흐르지 않는 것처럼 때로는 어둠을 때로는 빛을 받으며 삶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닐까.


다리를 건너고 노을을 등에 업고 강가를 걷다 보니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들이 보였다.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빛의 그림자 아래 추억이 보인다.



1986년이다. 종로 낙원상가 앞이다. 거리에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하면 그곳으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쪽 길모퉁이를 촘촘히 채운 포장마차 안에는 투명한 우리 상자 속에 빽빽하게 누워있는 얼음들 위에 해산물, 곰장어, 닭발.... 등이 주인의 입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시국을 논한다. 칠흑 같은 어두운 시간에 빛을 비추는 심정으로.


그 빛의 심정이 벼락같은 서광으로 빛난 것이 1987년 6월 29월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있고 그 사이 어느새 포장마차들은 거리의 미관을 해한다는 이유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의 그 포장마차들이 연출하는 광경을 이곳에서 보다니. 만감이 교차했다. 서민들의 숨소리가 거칠게 품어 나오던 그 포장마차의 불빛에서 나는 또 무엇을 보았을까.



출근길이다. 이슬을 맞은 풀잎들과 인사를 나누며, 길가를 걸으며, 계단을 오르며, 신호등을 건너며,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며, 행여 늦을까 걸음아 빨리 가자 재촉하는 이들의 틈 사이를 비켜 지나며, 옷깃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길가의 쓰레기통에서 먹이를 찾으려 어슬렁대는 비둘기들을 보며... 오늘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고 내게 말한다.


퇴근길이다. 저녁노을이 대지를 품으려 한다. 나는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인적은 드물며 길가에 자리한 식당들 창문 틈 사이로 갑남을녀들이 환하게 웃는다. 길모퉁이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담배 한 개비에서 피어 나오는 연기와 같이 허공에 뿌려버리려 불을 댕기고 있는 사람,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듯 허겁지겁 계단을 오르는 남자, 집에 가는 열차에 몸을 맡기고 환승역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돌리면 열차가 오고 다시 환승역.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많은 인파 속으로... 들어가며 나는 걷는다. 설렘을 안고.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저만치 걸어가는 아내와 딸의 뒤를 가다가 나는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잠시 멈추었다. 강을 바라본다. 노을이 비추는 미숙한 물결에 나의 내면을 바라본다.


광야가 보인다.

대지를 태우며 아침 해가 올라온다.

광야의 주인은 바로 너다 라며.

어느 길을 갈까.

라고 내게 묻는다.


길은 열려있다.

선택은 너의 몫이다.

라는 소리가 울린다.


설렘이 몰려온다.

나는 묻는다.

무엇을 위해,

너는,

이곳에 있는가.


나는 소리 없이 말한다.

이 설렘의 풍경에서 정기를 받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대자연이 준 선물을 품고 우리는 20분 정도를 걸어 캐널시티라는 곳에 도착했다. 내가 "여기는 세이브존 같은 곳인가 보네."라고 말하자 아내와 딸은 폭소를 쏟아냈다.

아내가 말했다.

아니야. 유명한 쇼핑몰이야.

그러자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촌놈이 다 되었네, 크크크.....


건물 안을 걷다 보니 잠시 후에 광장에서 분수 쇼가 있을 것이라는 안내가 들렸다.

분수쇼가 있다는데,라고 내가 말하자 아내와 딸이 난간 쪽으로 걸어가고 나는 뒤를 따른다. 광장 아래를 보던 아내가 뒤를 보며 내게 말했다.

쇼 보고 갈까?

그러자.

10분 정도를 기다리니 쇼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광장 앞에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공연은 20여분 정도 이어졌다. 애니메이션 강국답게 분수대 뒤 건물 벽으로 다양한 만화 캐릭터들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연출하고 파랑, 빨강, 노랑 등 여러 색을 입은 물줄기가 화려한 배경음악을 타고 솟아오른다.

삶의 길은 다양하다고 말하듯이.


사진: 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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