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마법을 부린 순간

by 김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아내의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니 아내도 그런 모양이다. 자고 있는 딸에게 방해될까 나는 카톡으로 짧은 말을 아내에게 건넸다.

일어남?

응.

배고파?

조금.

나갈까?

어디?

편의점.

계란 샌드?

응. ㅎㅎ

ㅋㅋ 그래.


우리는 꽁지발을 하며 조심스레 방을 나왔다. 계란 샌드위치는 아내와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아내는 이곳에 오기 전에 몇 번이고 이번에도 꼭 먹을 거야, 하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딸이 고3 때 국립대학 논술고사와 면접시험을 치르기 위해 일본을 여러 번 왕복하며 먹었을 때 그 맛에 반했다고 했다. 나도 예전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때 먹던 그 맛인지 궁금했다.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거리는 촉촉했고 공기는 맑았다. 어제, 저녁노을과 만났던 곳을 잠시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 광야에서 내게 건넨 메시지를 떠올려본다.


설렘, 희망....


이 여행길이 마법의 길이 되길 바라며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를 사고 호텔방으로 우리는 돌아왔다. 수면 중이던 딸이 테이블 위에서 나는 바스락 소리에 눈을 뜨자 아내가 말했다.

oo이 샌드위치 먹자.

........

아무 말 없던 딸이 아내와 내가 먹기 시작하자 일어나 테이블로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아내가 연한 미소를 머금고 샌드위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




버스투어를 취소했으니 가볼 만한 곳이 어디냐고 내가 말했다. 아내가 “그전에 왔을 때 비가 와서 못 가본 오호리 공원에 가보자.”라고 말하자 딸이 위치를 검색하더니 지하철로 두 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했다.


오기 전에 계획한 대로 편의점 계란 샌드위치로 첫날 아침을 해결한 우리는 잠시 후에 호텔을 나와 5분 정도를 걸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오호리 공원역에 도착하자 딸이 휴대폰으로 구글 지도를 보자 아내가 내게 말했다.

우리도 지도 검색 방법을 잘 알아야겠어. 앞으로 둘이서 어디 가려면.

그래.

잘 배워봐.

네. 크크.


5분 정도 걸으니 공원에 도착했다. 호수를 껴안고 있는 둘레 길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원길을 걷다 보니 스타벅스가 보였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사람들의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아빠는 뭐? 라테?

응.

그럼 우유를 두유로 바꿔 마셔. 설사하면 안 되니까.

그래.

엄마는?

.... 나는.... 디카페인아이스라테.

테이크아웃해?

아니, 내가 자리 있나 볼게.


안은 손님들로 가득해 밖으로 나가보니 운이 좋게도 한 팀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이 떠난 후에 나는 테이블에 앉아 아내와 딸이 있는 곳을 향해 손짓으로 “여기 앉아 있을게” 하는 신호를 보냈다. “오케이”라는 모녀의 손 신호를 보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공원 호수의 둘레 가에 촘촘히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대화하는 가족, 연인, 친구들이 보였다. 잠시 하늘을 나는 바라보았다.

맑다.

갈매기 한 마리가 지나간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마 여행을 가는 길일 테지,

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둘레 길을 달리는 사람들이다. 그룹으로 뛰는 사람들, 대화하며 달리는 사람들, 슬로 조깅하는 사람들...... 주님이 선물하신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잠시 후에 모녀가 커피를 들고 자리에 오자 내가 말했다.

여기는 조깅하는 사람 무지 많다.

딸이 말했다.

한국도 그래. 지금 조깅 붐이야.


슬로 조깅 자격증 시험도 있다고 알려진 일본처럼 오래전부터는 아니지만 한국은 지금 러닝 바람이 한창이다. 단거리 마라톤을 주제로 하는 방송도 할 정도이니. 달리기 관련 영상 콘텐츠도 넘친다. 나도 최근 들어 러닝을 하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줄곧 걷기만 했던 내가 슬로 조깅을 6개월 전부터 시작했다. 신체 나이가 높아짐에 따라오는 근육 감소로 노출되기 십상인 무릎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저녁을 하고 집 앞 공원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본다. 그들의 모습도 이곳의 사람들처럼 각자의 삶을 투영하듯 다채롭다.


영상을 보며 걷는 사람, 천천히 또는 빠르게 걷는 사람, 달리는 사람.....


잠시 후였다.

빨강 자전거가 지나가자 딸이 아내에게 말했다.

자전거 탈까?

그래.

딸이 잠시만 하고 말하더니 차리차리(charichari) 앱을 다운로드하고 결제를 했다. 세상은 넓고 즐길 거리는 많다는 것을,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 인터넷이 부른 마법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휴대폰 결제를 마치자 딸이 아내를 보며 “가자.” 하고 말했다. 그러자 내가 산책하러 가자고 할 때 가끔 자전거 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이곳에서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는 표정으로 “응”하고 대답했다. 아내와 딸이 자전거를 타러 간 사이에 나는 테이블 위의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국의 공원에서 혼자남아 마시는 그날의 라테는 특별한 맛으로 다가왔다.


왜였을까.


커피 안에는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에서 오는 우리들만의 여행길에서 피어나는 온기가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행이 마법을 부린 순간이었다.


사진: 김곤(오호리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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