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의식의 통일성과 자기의식

데카르트와 칸트의 통찰

by 길엽


의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매 순간 수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생각을 하며, 여러 감각을 느낀다. 그런데 이 모든 경험들이 단순히 흩어진 파편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의식 안에서 조직되고 통합된다. 아침에 마신 커피의 향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 이 모든 것이 '나'라는 하나의 주체 안에서 경험된다. 이러한 의식의 통일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데카르트와 칸트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했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에서 회의를 통해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찾고자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단순히 존재의 확실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코기토는 모든 사유 활동의 근저에 자리한 자기의식을 의미한다. 데카르트에게 의식의 통일성은 바로 이 코기토, 즉 자기의식에 의해 보장된다.


데카르트는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하고 판단할 때, 그 지각과 판단이 나의 것이라는 의식이 항상 동반된다고 보았다. 내가 책상을 본다면, 단순히 '책상이 있다'는 표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상을 보고 있다'는 자각이 함께 한다. 이러한 자기의식의 동반이 없다면, 그 표상은 누구의 것도 아닌 떠도는 관념에 불과할 것이다. 코기토는 모든 사유 작용에 내재하는 자기 투명성이며, 이를 통해 다양한 표상들이 하나의 의식으로 통합될 수 있다.


칸트는 데카르트의 통찰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정교한 분석을 제공했다. 그의 비판철학에서 의식의 통일성 문제는 핵심적인 주제였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나는 생각한다(Ich denke)"라는 표상이 모든 나의 표상들을 수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유명한 '통각의 초월적 통일' 이론이다.




칸트.jpg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경험은 다양한 감각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각, 청각, 촉각 등 여러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들은 그 자체로는 혼란스러운 잡다함일 뿐이다. 이러한 잡다함이 하나의 통일된 경험으로 종합되기 위해서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자기의식이 모든 표상에 동반되어야 한다. 내가 빨간 사과를 본다고 할 때, '빨강'이라는 색감, '둥글다'는 형태, '사과'라는 개념 등 다양한 표상들이 '나의 의식' 안에서 하나로 결합된다. 이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초월적 통각, 즉 모든 표상을 자기의 것으로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칸트는 이러한 통각의 통일이 단순히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초월적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것은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이다. 만약 "나는 생각한다"가 내 모든 표상에 수반될 수 없다면, 그 표상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의식의 통일성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고 인식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인 것이다.


더 나아가, 칸트는 이러한 자기의식의 통일이 의식에 정향성을 부여한다고 보았다. 정향성이란 의식이 항상 무언가를 향해 있다는 특성을 말한다. 우리의 의식은 결코 공허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항상 대상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향성이 일관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향하는 주체의 동일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라는 자기의식이 모든 표상에 수반됨으로써, 의식은 단순히 산발적인 지향들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세계를 향하는 일관된 정향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통찰은 현대 철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의식의 통일성 없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객관성도, 우리 자신의 정체성도 성립할 수 없다. 자기의식은 단순히 나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적 의식이 아니라, 모든 인식 활동의 형식적 조건이다. 데카르트와 칸트가 보여준 것은, 의식이 하나의 통일체로서 기능하고 세계를 일관되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모든 표상과 판단에 자기의식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진리다.


결국 의식의 통일성과 정향성은 자기의식이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고, 사유하고, 판단할 때, 그 모든 활동의 밑바탕에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자기의식이 깔려 있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와 칸트가 발견한, 의식의 본질에 관한 깊은 통찰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자의 서재에 인문학이 왜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