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실패 1> 서울대의대 재원이 성대 야간대학 진학
1화. 실패로 본 성공 비법-서울대의대 편
● 대학입시 준비 명심 또 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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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과 목표를 가지면 대학 진학에 큰 도움된다. 억지로 되는 건 아니어서 통하는 학생, 아닌 학생 나뉜다. 이후 회차에서 봅시다
2. 새벽 공부 습관이면 기숙 고등학교 들어가면 아니 된다. 무조건이다. 입학했다면, 습관 안 고쳐지면 전학하라. ASAP. as soon as possible. 아니면 대입 폭망 보증한다
3. 이과반에서 문과, 문과반에서 이과 공부 말라. 옮겨라. 반이 안 되면 학교라도 주저 마라. 아니면 나무에서 고기 구하는 격
4. 학생회장 하지 마라. 큰 장애물. 공부 잘할수록 장으로서 책임감 오지다. 두 단계 낮은 대학 가고 싶거든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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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입시 대실패 원인 넷
17세. 1978년. 원주고 3학년. 지역 일대서 시험 봐서 선발. 한 반 60여 명씩 7개 반 중 7반을 특수반이라 하여 성적순 61명. 나는 종합 성적 고2 전교 2등서 고3 30등으로 추락.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다. 뭐라는 이도 없다. 국민학교, 중학교 원래부터 나는 늘 탑에서 놀았으니까. 새벽 공부. 저녁 8시면 폭포수처럼 잠 쏟아져 세상 모르고 잔다. 새벽 3시 자동 기상. 7시간 푹 자고 나면 하루 중 가장 맑은 뇌는 바짝 죈 스펀지에 닿은 물처럼 학습을 쏙쏙 빨아들인다. 아침 7시까지 4시간. 어릴적부터 습관. 일찍 자니 일찌감치 일어났고 그러니 초저녁이면 잠든 거
1. 기숙사 입소
특수반 61명 중 최상위 20명 기숙사 입소. 일명 서울대반. 새벽 공부 습관이 입소 첫날부터 박살난다. 저녁 8시면 어김없이 눈꺼풀 천근만근 옆 교실에 홀로 몰래 숨어들어 마루 바닥에 쓰러져 정신 없이 잔다. 밤 12시 기숙사 입실 시간. 들어가 침상에서 이어서 잔다. 새벽 3시에 눈 떠지는데 친구들 모두 수면. 방해라 불 켤 수 없다. 다시 잔다. 교실은 전등 못 켜고. 고3 1년 내내 잠 실컷 잤다. 저녁 8시부터 아침 해 뜰 때까지
2. 이과반에서 문과 공부
게다가 이과반인데 문과 과목 독학. 키 순서로 58번. 교실 제일 뒷자리라서 이과 수업 시간에 몰래 문과 책을 무릎 위에 펼친다. 앞에서 선생님 수업하고 나는 조마조마 다른 거 공부. 잘 될 리 없다. 이유 단순. 남자가 쪼잔하게 이과라니. 크게 놀려면 문과 가야지. 61명 중 단 둘이 이러니 내 짝과 나. 짝꿍은 재수했고 연대 경영학과. 한전 계열사 부사장급까지 오르고 작년 은퇴
3. 겉멋
더욱이 나는 매일 헛바람에 똥폼만 잔뜩 잡았다. 나는 태권도 유단자로서 선수까지 했던 싸움짱급. 군사 정권은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연대장, 지금으로 치면 학생회장을 원했고 나야말로 최적임자. 매주 전교생 학교 운동장에서 군대식 분열. 1,300여 명 학생과 모든 선생님 앞에서 구령. 어쩌다 귀가 날 치악산 인적 없는 골짜기 찾아 들어가서 열중 쉬어, 차렷. 쉬어, 교장 선생님께 경례. 목이 터져라 외쳐 연습한다. 한날은 산 너무 깊이 들어가 낙엽이 무릎까지 푹푹. 길 잃어 죽을 뻔했다는. 매일 등교 시간이면 정문에서 두발, 복장 검사, 수시로 반 돌며 가방 검사해 후배들 군기 반장하니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현충일에는 원고가 지역 대표 학교라서 모든 남여 고교 제일 앞 선두에 서서 시내를 관통해 현충탑까지 제왕인 양 행렬을 이끄는 영예. 박정희 대통령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딸 박근혜는 대한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로 정치 활동. 총재상 수상자로 강원도 대표 1인 나 한 명. 상 받으러 춘천까지 인솔자 윤리 선생님과 둘이 가서 4일간 종일 상 받는 연습만. 내 순서 기다렸다가 단상을 오르락 내리락. 책 한 권 안 들고 갔다. 여관서 먹고 자고 저녁에 영화관 가고 시내 구경 다니고. 수상 예행 연습 중 절대 총재님과 눈 마주치지 말고 가슴팍 향하라고 신신당부. 하지 말라면 더 하는 나. 고개 쳐들어 얼굴 보니 갸름하고 이쁘장하니 여성답다. 아무일 없던데? 웬 흔들갑? 친구들 수학의 정석, 성문종합영어 들입다 파는데 나는 1년을 꼬박 이랬다. 공부는 수업과 방과 후 자습 한두 시간 가량이 전부
4. 목표 부재-결정타
결정적으로 목표 대학이 없었다. 진로를 정하고 서울대를 목표로 삼았더라면, 서울대가 어떤 대학인지 알았더라면 고3이 확연히 달랐을 거. 이처럼 허망하게 보내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서울대학교가 뭔데? 서울에 있는 대학? 내가 아는 건 그 정도. 허긴 원주고등학교도 그냥 온 거지 무슨 뜻이 있거나 목표거나 아니었다. 지역에서 다들 못 보내 안달인 고교이건만. 부모님도 선생님도 나를 너무 믿었던 거. 장남이라 그런 거 말해줄 형도 선배도 친척마저 없었다. 탓하는 거 아니다. 기숙사 거부 안 한 건 나다. 그때는 학교서 하라면 무조건 해야하는 거로만 알았다. 순진했던 거고 일찍 흥한 자 일찍 망했던 거였다
그해 원고 역사상 대입 최고 실적. 서울대 열 명 이상 합격. 웬만하면 스카이. 의대도 서울대의대 2명 포함 9명. 특수반인 우리반이 거의 다. 담임이 서울대 1순위로 찍었던 나는 실력이 처져 만만한 서울대 농대 지원하라는 걸 단호히 거부. 나보고 농사나 지으라고? 이과 과목 공부 하나도 안 했다니까 담임 기겁했고 사실임을 알고는 강권 포기. 고려대 정경대학 지원했지만 본고사 준비 안 돼서 특히 수학 문제 거의 못 풀어서 불합격. 바로 그날이었다. 화려한 청춘의 대방황 개막일. 고민 끝에 후기 성균관대 야간대학 무역학과 진학. 특수반에서 최고로 특수하게 최하위 대학. 야간이라니. 한 명 빼고 다 내 아래였는데 어느날 나는 바닥. 나 스스로 나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내가 돈 벌어서 다닌다고, 부모님 돈 걱정 안 하게 해드린다고. 1년 마치고나서 아무래도 아니어서 재수인지 삼수인지 반년 가량 서울 대흥동 독서실 들어가 자습.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로 갈아탄다. 안타까운 일 하나. 내내 1등이었던 친구는 서울대의대 입학 후 백혈병 발병 1학년 때 사망
이때다. 꿈과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에 새긴다. 이후 뭐든 새로 시작하면 꿈이나 목표부터 설정. 그리고 최악의 경우 설정. 대학입시 대실패의 교훈은 31년 후 아들에게서 빛을 발한다. 자식 둘 중 큰아들이 나 판박이. 성격, 문과, 기숙학교. 게다가 1학년 성적이 나보다 1등 앞서서 고교 전교 1등에다가 전국 모의고사 99.99% 전국 탑까지. 체격과 인물도 나보다 나았고 남녀공학. 내겐 없던 여친에 주위에 여학생들 줄러리. 학생회장의 유혹. 앗, 진짜 큰일났다. 나 판박이 되겠다. 고3의 악몽이 고스란히 재생된다. 비상사태 발령. 천신만고 끝에 서울대의대 합격. 반면에 정반대 성격이자 같은 실력인 작은아들은 서울대의대와 인연이 닿지 않았고 카이스트 진학. 사연이 깊어서 다른 회차에서 다룬다. 나 입시 상담만 했어도 월 수 천만 원 수입 알고 있었다. 입학사정관제 첫해라 나만큼 실전 정보 및 성공 사례 가진 이 전국에 전무. 두 아들이 특출난 걸 안 이후로 5년 대입 및 고입 제도 몰입 및 통달. 결론. 학생은 공부 전념하고, 학부모는 제도를 공부해야 한다. 책 한 권 내면 인세 수입 꽤 된다는 거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안 했다. 이거도 다른 회차로 미룬다
브런치북 소개에 미리 말해 두었다. 자랑 아니라고. 그럴 나이 지났다고. 본 연재로 한 명이라도 더 좋은 대학 가면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