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연재 시리즈. 실패로 본 성공 비법ㅡ대기업 편. 자랑 아니요, 그럴 나이 지났다고 소개에서 밝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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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못은 해머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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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장님 저 미워하시죠
부장님, 술 한 잔 사 주세요
1989년. 신입 2년차. 럭키소재 구매부
일과. 자취방 06시 기상. 여의도 영어 학원 AFKN 청취 1시간. 08시 회사 출근해 머리 감고 세수, 이 닦고. 업무 준비부터 시작해 종일 눈코 뜰 새 없다. 5분 아끼려고 화장실서 서류 들여다 보고. 신입이 과장, 부장, 임원 업무까지 떠맡아 사업부장인 전무와 일대일 다이렉트 업무. 주거래선 미쓰비시, 미쓰이와 국제 통화. 가격 네고. 급할 땐 메모지로 전무에게 보고. 실질적으로 내가 가격 결정. 매번 몇 억 단위, 달에 두세 번. 부하 직원 최소 하나 두고 위로 하나 해서 셋이 할일을 혼자 다 한다. 주원료 장기 거래 계약을 영문으로 체결부터 가격, 수입, 선박 일정까지. 공장과 업무 협조, 출장. 기타 잡무. 신생 회사, 신생 사업부에서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다보니 그리 된 거. 부장에게 찍힌다. 해서 사람을 안 붙여주고 나만 더 고립. 2년. 지친다. 맥 빠진다. 이게 무슨.
퇴근 후 여의도 양주집 지하. 과장 대동. 양주 나발 불다시피 잔 연거푸. 단도직입 묻는다
부장님, 저 미워하시죠?
묵묵부답. 약은 과장은 구경꾼
저 이 자리가 회사 마지막입니다.
내일부터 출근 안 합니다. 할말은 하겠습니다
여전히 묵묵부답. 양주 한 병 반 분량 마셨지만 정신 바짝. 흐트러짐은 없다
저 미워하시잖아요. 남자답게 솔직합시다. 저 군대 갔다 왔습니다. 알 만큼 압니다. 저 바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죄 지었나요. 왜 절 괴롭히십니까. 신입사원이 무슨 진급 욕심이 있나요. 신입이 전무에게 잘 보일 일 있나요? 이런다고 월급 더 주나요. 일이 보이니 알아서,찾아서 했을 뿐입니다. 저 영어 되고 부장님 영어 안 되고. 부서에 영어 아무도 안 됩니다. 그거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저라도 되니 일본인, 미국인 상대했을 뿐입니다. 자연스럽게 전무님과 저 둘이 관련 업무하게 되었구요. 영어 하는 게 무슨 죄입니까? 저도 이러는 거 싫거든요. 아시잖습니까. 셋이 나누어 할 일인 거. 구매부 부장님이면 다른 사람 하나라도 저에게 붙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업무를 나누든지. 다시 묻습니다. 부장님, 저 미워하지요?
묵묵부답. 양주잔만 기울인다
답 안 하셔도 됩니다. 기대한 거 아닙니다. 2년 하니 이제 의욕도 남은 힘도 없습니다. 억울해서 할말은 해야겠어서 보자고 한 겁니다. 내일 출근하시면 즉시 저 퇴사 처리해 주십시요. 내일부터 출근 안 합니다. 인연이 여기까지 같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무슨 계획이란 게 있어서 이런 거 아니었다. 말한 그대로였다
■ 원주보내주세요
입사 2년 차 아버지 돌아가신다. 대리. 그 사이 회사 합병 당해 LG화학 구매부 근무. 어머니 독거사 두려워 고향 원주 5년만 보내달라 요청. 이대로면 성공 보장인데 지방 왜 가냐고. 석 달 간곡히 조르다 안 돼서 사표 제출. 그리 심각하냐며그제서야 알아본다. 현 회사 자리 없고 다른 계열사 자리 하나 생겼는데 괜찮냐고. 원주면 무슨 일이든 상관없다. 해서 LG생활건강 화장품사업부 원주영업소. 영업 처음 하게 된다
■ 맥주병이냐 구두짝이냐
ㅅㅂ놈아, 내가 관둔다. 됐냐?
1991년. 대리 2년차. 영업팀 월례 회의. 수원. 회의실. 부장은 꼭 나부터 보고하란다. 개박살. 매달 그러니 다 안다. 나만 대놓고 까는 거. 임마, 너 굴러온 돌이잖아. 니가 뭔데 다른 회사에서 니 마음대로 원주를 지정해서 끼어들어. 지져밢으려고 한껏 조지는 거. 한 번, 두 번은 참는다. 세 번째. 역시나 테이블 중앙 부장, 좌우로 5명씩 10명. 나는 부장 반대쪽 서서 업무 보고 시작하자마자 또 개망신 당하는 나. 속으로
저 ㅅㄲ까지 5미터. 탁자에 오른다. 여섯 발걸음. 놈 앞에 서서 놈을 내려다 본다. 오른 손으로 구두를 벗어 들고 바닥으로 놈의 오른 뺨을 거세게 후려친다. 그럼 놈 가발 벗겨진다. 동시에
그래. ㅆㅂ놈아. 내가 관둔다. 됐냐?
그리고 회의실 나와 차 몰고 원주 집으로 복귀한다. 그럴까 말까 갈등하는데 퍼붓다 지쳤는지 브리핑 다른 직원으로 교대
다음달 부장 원주 방문. 전에 일은 잊었다. 원주서 회의. 또 깐다. 원주는 아니잖아. 너 달에 한 번 원주 출장 올 때마다 왕 대접 해줬잖아. 젤 맛난 거 사 주고, 젤 좋은데만골라서 차로 모셨잖아. 젤 깨끗한 호텔 잡아주고, 같이 아침 일찍 사우나, 해장 하고. 단 한 번 소홀한 적 없잖아. 이제 나도 영업 잘하잖아. 처음 영업이라 서툴러서 욕 먹으며 배운다 쳤어. 이제 내 봉급 몫 하잖아. 수원 영업팀 회의야 전체 자리니까, 보는 눈들 많으니 굴러온 돌 구박할 순 있어. 여긴 내 구역이잖아. 내 여직원들 다 보고 듣잖아. 이건 아니지. 이 ㅅㄲ가 날 완전 호구로 보는군. 꾹 참고 저녁 먹이고 술 사주니 관광호텔 나이트클럽 가잔다. 부장, 내 직속 과장, 여직원 셋, 그리고 나. 여섯. 부장과 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본다. 부장이 내게 맥주 잔 들어서 내민다
야, 술 따라
야? 나 대리거든. 내가 술집 접대부냐? 부하 직원 셋이나 지켜보고 있거든. 이럼 내가 어떻게 통솔해. 이런 씨ㅂㅅㄲ. 더는 못 봐 주겠군. 이번이 다섯 번째. 이젠 술집에서까지 망신을. 맥주병으로 머리를 깔까, 구두 벗어 낯짝을 후려칠까
과장이 내게
뭘 해. 부장님 맥주 따라 드리지 않고. 기다리시잖아
나는 부장을 노려보면서 병이냐 구두짝이냐. 그래, 구두짝으로 하자. 병은 유리라 피 튀길 거. 회사가 조폭은 아니다. 구두짝으로 뺨이면 그게 더 망신. 망신은 망신으로 갚는 게 맞지. 대신 우로 짝, 좌로 짝. 뺨이 찢어지도록. 그럼 낯짝 자국에 출근 못 할 거. 내일 전국으로 소문 삽시간에 퍼질 거. 특히 영업이사. 이 자 처음 인사 갔을 때부터 지가 한 인사 아니라고 처음부터 나를 티껍게 대했어. 부장 ㅅㄲ가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날 괴롭히는 거 보면 지시까지는 아니어도 암묵적 동의가 있다고 봐야. 귀싸대기 당연히 이사 귀에도 들어갈 거. 그래 병보다 구두짝이 훨 낫다
재촉해도 미동도 없이 눈에 불 튀기며 부장을 째리는 나를 본 과장. 기겁한다
안 돼. 이러면 안 돼. 부장님 무대 가서 춤 추죠
과장은 내 앞을 막고 부장 손을 잡아끈다. 부장도 눈치챘다. 얼른 일어나 무대로 도망친다. 과장은 어색함 덜으려 여직원 셋도 무대로 부른다. 감 잡았고 걱정스레 뒤돌아 보며 끌려 나간다. 과장은 나와 부장을 잽싸게 분리 시킨 거. 방아쇠 당기려는 순간 눈앞의 표적을 잃은 나. 맥주 병나발. 업소를 빠져나와 담배. 극도로 끌어올린 전의가 진정 안 된다. 집까지 터벅터벅. 새벽까지 잠자리 뒤척. 회사 이만 끝내자. 원주서 5년 채우려 했는데 비굴하다. 이런 ㅅ퀴로 내가 초라하구나. 날 밝으면 사표 쓰자
아침 정시 출근. 부장이 먼저 와 있다. 바로 사표 써서 폼 나게 면상에 던져주고 내 집 가자. 저 ㅅㄲ 있을 때 사표 써서 면상에 던지자
나를 보자마자 부장이 부른다
대리. 어제 고생했어. 이리 와. 커피 한 잔 해
어랏, 이 ㅅ퀴가 미쳤나. 처음 듣는다. 이런 다정한 어투, 고생, 커피까지. 회의실 따라 들어가니 세상 인자 다정하다. 음, 화해하자는 거군. 앞으로 갈구지 말라고, 또 그러면 가만 안 두겠다고 다그칠 필요는 없다. 부장은 사람 대하는 영업으로 닳고 닳아서 아하면 어 금방 안다. 나야 사내 아닌가. 내가 호구가 아니라는 거,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거 알면 됐다
그 달부터다. 영업팀 회의에서 첫 브리핑 순서는 나 아닌 매출이 가장 저조한 다른 영업소부터. 몇 달 후 부장은 나를 다시 첫 번째 브리핑 세운다. 전국 최고 실적으로 내가 독자 개발한 마케팅 비법을 전파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