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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an 08. 2020

(보충 학습 1) 색안경

생각놀이ㅡ삶이란


-- 늦기 전에 색안경을 벗어야 하지 않을까? 눈을 되찾아 빛으로 충만한 세상을 아름다운 총천연 제 색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  


       



한 세대 전

1986년 8월 14일         

밤 10시 30분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 630호 서진 회관 룸싸롱에서 폭력 조직 서울목포파 8명이 맘보파 4명을 집단 살해하고 도주한다.   

   

다음 날 오전.   

  

모든 신문은 하나같이 사건을 대서특필하여 일면을 도배하고, 테레비마다 수사 상황을 시시각각 특보로 보도하며 카메라를 사건 현장에 들이댄다.   

  

사건의 발단은 무시해서다. 맘보파가 목포파 구역의 룸싸롱에서 술김에 목포파 한 명의 싸대기를 후려쳤다. 그곳이 안방 격인 목포파는 재빠르게 그들 세계에서 작업 도구라 일컫는 흉기들로 중무장했다. 여자 끼고 양주나 먹으러 온 맘보파는 맨몸이었다. 뺨 맞은 자가 분김에 집어 든 건 일본도. 날이 번쩍번쩍 빛나고 기다란 게 무너진 자존심을 살리기에는 이만한 게 없다. 겁을 주려고 일본도를 세워 들고 때린 자를 겨냥한다.   

  

"사내자식이 칼을 뽑았으면 베어야지. 베어 봐 인마. 베어 봐."     


사과는커녕 패거리 앞에서 깐죽대며 화를 돋운 게 문제였다. 순간 분노를 가득 실은 장도가 무거운 실내 공기를 갈랐다. 단칼에 무 자르듯이 삿대질하고 있는 팔을 내리쳤고 과연 무처럼 두 동강 났다. 붉은 피가 솟구쳤다. 기겁을 한 맘보파 일당은 룸으로 도망가 문을 걸어 잠갔다. 하지만 피맛을 본 목포파는 악마로 돌변했다. 도끼로 문을 깨부수고 난입해서 일본도로 베고, 도끼로 찍고, 회칼로 찔러댔다. 얌전히 죽이기 아까워 도륙을 냈다. 고급 타일을 깐 바닥은 선혈로 흥건하고, 화려한 문양의 벽지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손을 짚고 일어서다 묻힌 피로 얼룩졌다. 무장이 월등했을 뿐만 아니라 목포파는 수 또한 압도적이어서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맘보파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난도질한 목포파의 다수는 운동 특기생으로 진학한 유도대학 학생들이었다.      


국민들은 전쟁 이후 처음 보는 사건의 잔혹성에 경악했다. 더구나 새 시대의 희망인 대학생들이 그 주역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에 빠진다.    

 

낮 12시 점심시간 고려대 교정.

    

화강암을 장방형으로 네모반듯하게 잘라서 켠켠이 쌓은 대학원 건물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본뜬 거란다. 사진에서 보는 중세 유럽의 성곽을 닮았다. 건물은 언덕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성주인 양 안암동 일대를 내려다본다. 건물에서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 중간에 화강암으로 조각한 호상이 우뚝 서 있다. 사람 키 정도 지름의 둥그런 지구와 그 위에 올라탄 호랑이 형상이다.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

너 불타는 야망 젊은 의욕의 상징아    


호상에 새긴 조지훈 시인의 호상 비문 중 두 줄이다. 열 줄 중에서 유독 이 구절에 이르면 두근두근 가슴을 두드리는 심장의 뜨거운 피를 느낀다. 영국식 건물과 한국형 호랑이상은 같은 화강암 석재라는 점에서 형제다. 허나 거구의 형은 양복을 차려 입고 왜소한 아우는 갓 쓰고 도포 걸친 조선인 같아 근본이 다른 이복형제다.


대학원 건물과 호상 사이에 작은 숲이 아늑하고 숲 한가운데 야외 간이매점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 주변 여기저기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매점에서 산 김밥이나 집과 하숙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바닥에 펼쳐 놓는다. 거리가 가까워 싫든 좋든 열띤 토론의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주범은 사형이고 종범은 종신형이다, 전관 변호사를 사도 어렵다.....”

보나 마나 법대생들이다.  

   

“룸싸롱 쫄딱 망했다, 투자비 다 날렸다, 소문 다 나서 아무도 거기 안 갈 거다.....”

이건 경영대생들이 틀림없다.  

   

“야, 한 편의 무협지다, 성깔 하나는 장비다, 어둠의 자식들이다.....”

이건 낯이 익은 문과대생들.     


온통 서진룸싸롱 살인 사건 이야기이다.

놀랍고 흥미롭다. 한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이.  

       

학생들은 학과별로 사 년 학업을 마치고 졸업 즈음이면 전공이라는 이름의 선명한 색안경을 지니게 된다. 빨간색, 파란색, 그리고 회색의 단색 안경. 각각은 자신만의 색안경을 자랑스럽게 쓰고 사회로 진출한다.  

   

법정에서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회사에서 이윤 극대화에 매몰되고,

사회에서 비정한 현실을 개탄하고.      


그렇게 한 세대 삼십 년을 파묻혀 외길로 살다 보면 세상이 온통 빨강, 파랑, 잿빛 하나뿐인 양 믿게 되지 않을까? 보면 믿게 되니까. 아니면 세상을 단색으로 믿고 싶어 하지 않을까? 믿는 것만 보일 테니까. 세상은 엄연히 총천연색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알고는 있으면서도.

    

다들 세파를 겪다 보면 안경 색이 바래서 연하게 보이기도 하고, 때로 알에 금이 가서 틈으로나마 눈으로 내다볼 수 있지만, 삶은 여전히 모질어서 색안경을 강요한다. 잠시라도 벗으면 한낮의 태양 빛에 금방 눈이 멀기라도 할 것처럼 겁을 주면서. 빛이야 말로 눈이 존재하는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50을 훌쩍 넘어 60으로 치닫는 나이에 은퇴할 때쯤 되면 색안경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제 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오랜 세월 단색 안경에 길들여져서 빛을 두려워한다.     


60 지나 70을 바라보면 그때 색안경을 벗으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제는 단색 안경 뒤에서 눈이 퇴행되고 기능을 잃어버려서 안경을 버리기는커녕 없이는 불편한 형편이 되고 만다. 비록 시력은 잃었지만 그나마 안경이 흉측해진 눈을 가려주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는 해주니까.

    

대개 사람들은 젊어서 색안경에 집착하고 늙어서는 의지한다. 이들은 일생을 편견, 오만, 비교에 사로잡히고 불평, 원망, 편 가르기 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도.      


다행히 일찍이 색안경을 벗어 내던진 사람이 드물지만 있다. 이들은 자신을 낮추어 이웃을 배려하는 친절한 마음을 지녔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실천하기도 한다. 멀리 성인군자가 아니어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면서 작은 촛불과 같이 빛을 뿜어 어둠을 밝혀 준다. 미소 짓게 만들고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한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은 벗어버리지는 못 하더라도 이따금 색안경을 조금 들어 올리고 잠시나마 세상을 바로 보려고 시도한다.      


늦기 전에 색안경을 벗어야 하지 않을까? 눈을 되찾아 빛으로 충만한 세상을 아름다운 총천연 제 색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벗는 게 힘겹다면 적어도 색안경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한 것 아니고, 권력을 쥔 이도 돌아보면 마음이 공허한 이유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대학 전공은 단색 안경이고 직업은 눈을 멀게 한다. 나는 서진 룸 살인사건 때 남의 색안경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31년이 지난 이제야 정작 내 눈에 굳게 씌워진 색안경을 알아챘다.   


         

20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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