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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Aug 23. 2023

이제는 시댁과 적당히 가까워지기.

10년차 며느리의 시댁과 멀어지기 ⑩

시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관계의 여백'이 필요하다 판단하여, 우리부부는 시부모님 가정과 밀착되어있던 관계에서의 거리를 만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 부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부모님도, 시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아니라는 것. 우리 부부와 우리 딸, 우리 세명의 가족이 그 중심이여야 하고, 그 중심이라는 것.


평소 부부싸움의 횟수가 적지는 않았던 우리부부는 그동안 시댁과의 갈등아닌 갈등. 거리아닌 거리를 만들면서 많이 단단해졌고 유해졌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커졌으며, 신뢰가 높아졌다. 우리부부의 대화에서 늘 싸움의 소재였던 시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잘하지 않는다. 예전같았으면 시부모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듬을 표출하던 어리석은 나였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시부모님과 많이 벌어진 거리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 삶을 흔들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내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 두명. 내 남편과 내 딸이라는 것을.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친정엄마도, 친정아빠도, 매일 연락을 할만큼 가까이 지내고 서로 정서적 위안이 되어주는 우리언니도 아닌 것을. 그들과의 관계도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세 가족의 결속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지금껏 4달째 시댁을 출입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딱 하루, 아버님의 생신이 있어 다녀온 적은 있다. 옛날 같았더라면 혼자 가서 아버님께 용돈이라도 드리고 왔을텐데, 이제는 도저히 혼자 시댁을 방문하기란 너무 불편했던 지라, 원거리에 있는 남편에게 퇴근후 집으로 오도록 하였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아들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멀리 왔다면 그저 고맙다는 생각까지만 해도 될터인데, 시부모님은 피곤을 무릅쓰고 온 자신의 아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며느리에 대한 원망을 터놓으셨다. 멀리 있는 아들을 앞장세워서 며느리가 시댁에 오랜만에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기분이 안좋았지만 크게 표정과 감정의 동요없이 저녁식사 한끼 딱 먹고 시댁을 나섰다. 아마 어린 우리딸이 있다보니 가능한 일이였을지 모르겠다. 어른들끼리만 있었다면 큰 소리가 또 오고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벌써부터 다가오는 추석이 고민이다. 가까이 살아서 시댁에 자고올 불편함은 늘 없었지만, 가까이 사니 매일 가야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내게는 늘 있었다. 명절에 제사도 없는 집이지만, 제사가 있는 친정에 먼저 가는것도, 놀러가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시부모님인지라, 이번 명절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가야할지가 벌써부터 고민스럽다. 남편에게 이러한 내 마음을 털어놓으며, 추석전 시부모님과 함께 외식이라도 하자 건의했다. 추석때 시부모님을 대면해야 하는 그 부담감을 미리, 일부라도 해소하기 위한 예행 연습이라고나 할까.


이제 시부모님을 보면 예전과 같은 편안함은 없을 것 같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해못하는 그 시부모님은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부모님이라는 것과 내 딸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인 것을 잊지 않으리라.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서인지, 아니면 나도 시댁과 잘 지내고 싶은 내 마음속 저변에 그러한 욕망이 있었던지 시댁에 대한 나의 마음에 조금의 변화가 있을 것만 같다.




며칠전, 할머니집에 다녀온 딸아이가 할머니가 직접 만든 김밥이라며, 김밥한줄을 가져와서 건넸다. 시어머님이 딸을 통해 며느리인 나에게 전해달라 한 것이다. 그때도 김밥 잘 먹었다고 전화한통, 아님 문자한통이라도 보내는 것이 예의였겠지만, 나는 딸을 통해 할머니에게 김밥 맛있게 잘 먹었다고 전해달라 청했다. 이런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이 딸에게 부끄러웠지만, 여전히 나는 시부모님과의 대면이 생각만으로도 불편했기에 어쩔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어본다.


약 한달전에도 시어머님은 남편에게, 며느리에게 미안하다 전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남편이 직접 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자,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했단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평생 자신의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한건 처음인 듯 하니,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이 진심일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 주었다. 그 순간 어머님의 그 진심보다, 아 이 사람(=남편) 시부모님과 와이프 관계로 인해 여전히 힘이 들구나, 싶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시부모님과 충분히 멀어진 거리로,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어진 거리를 일정간격 좁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무엇도 아닌, 내 가족을 위해서. 내 남편의 부모님이고, 내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임을 그동안 잊지 않았나 하는 자책이 든다. 예전처럼 아주 밀착되어 지낼 상황은 없을터이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독립된 개체로서 지내보려한다. 내 남편 그리고 내 아이의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사실 이런 마음을 먹고 있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피할 수 있다면 계속 피하고만 싶다. 하지만, 나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만 앞세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족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10년차 며느리의 시댁과 멀어지기는 성공했으나, 너무 멀어진 관계로 적당한 거리유지를 위해,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조금씩 해보고자 한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 그리고 우리가족을 위해서.





* 저처럼 시댁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있으신 분들에게 저의 경험이 일종의 위안 또는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저는 크게 현명치 못한 사람이라, 잘 극복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의 과정이 저에게는 남편과  딸의  중요함을 새삼 깨달은 시기였습니다. 원가족으로부터 충분히 정서적, 물리적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겪은 성장통? 은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합리화해봅니다. 힘들었지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셋은 분명 성장했고 서로의 소중함을 더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모두의 건강한 독립을 응원하며, 또한 건강한 부부관계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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