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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니 Oct 11. 2022

그런데 이해되는 남편 나라 말

그 남자의 언어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비로소 인격의 열매가 맺힌다.”     


새벽 5시 30분.

알람소리와 함께 일어난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한다. 나는 4시 50분에 일어나서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다.      

남편이 냉장고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낸다. 칼로 몇 조각을 떼어내 먹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과 습관, 좋은 습관을 노력하는 모습이 썩 좋다.


쩌~억.

새벽 5시 40분, 귀를 찌르는 커다란 소리. 반려견 포도를 소환하여 “앉아! 엎드려! 기다려!”를 반복하며 작게 조각 낸 사과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는 이 사람, 정말 맛깔나게 사각사각 아삭아삭 쫍쫍 사과를 먹고 있다.      

이 새벽, 엄청난 데시벨로 다가온다.     

아이가 깰까봐 아까부터 신경이 쓰여 참던 것을 그만두었다.     


“행동과 움직임을 조금만 살살해주면 안될까?”     

이제부터 본격적인 남편 나라 말이 시작되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내가 출근 준비 하는 게 뭐 잘못됐어?”

“아니아니~ 출근해야 하는데 당연히 불 켜고 준비 할 것 해야지. 출근준비 하는 일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너무 이른 새벽이니까. 아이가 뒤척이면 수면의 질이 떨어 질까봐 그렇지. 그래서 조금만 살살 행동해 달라는 거지. 조금 배려해 달라는 거야.”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니까 출근하는데 내가 왜 배려를 해야 되냐고!”     

그의 언어는 독특했고 도통 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수면의 질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집 2호의 수면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다루어야만 한다. 덥거나 추울 때, 습하거나 건조할 때, 잠자리 환경이 바뀌거나 쾌적하지 못해 뒤척이는 일이 많아 질 경우에는 아침 기상 시에 두통을 호소하거나 구토를 한다.     

그래서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을 항상 신경 써야 한다. 당연히 알고 있는 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옆으로 빗나가버린 그의 생각과 말은 올바른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다.     

내가 미라클모닝을 할 때 북 라이트를 켜는 것, 최대한 자판 소리가 나지 않도록 두드리는 것, 화면 디스플레이 밝기를 자동 변경으로 설정해둔 것, 마른 식기를 정리할 때에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최소한으로 나도록 조심하는 것. 이른 새벽이기에 배려하는 행동이다.

나 집안일 하는데 왜 배려해야 하냐고 생각할 수 없다.      


긴 연휴에 그는 낮에 자고 새벽까지 TV나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다. 

평일에 직장 다니느라 연휴에 자유를 만끽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도 악순환이 되지 않도록 새벽에 잠을 자는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벽 3시, 4시 현관 센서등이 켜지고 꺼진다. 도어락이 띠리링하고 철컥하는 문소리가 퍼진다. 담배를 피우기 위한 들락날락은 우리 모두를 뒤척이게 했다.     

출근하는데, 돈 벌어 오는데 배려를 왜 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내가 난관에 봉착하는 지점이다. 설명을 해주어도 통하지 않기에 지칠 때도 있다.

엄마들의 수다를 할 때에 포기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더욱 극복해보고 싶다.     


출근한 남편에게 살며시 메시지를 보내본다.     

2호가 깨서 나왔다고.

너무 이른 새벽이니만큼 조금만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이건 ‘새벽에 출근하는 내가 뭘 잘못했는데’의 물음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생각이어야 한다는 걸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돈을 버는 것과 결부 시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생각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늘 그랬듯 답은 없다.


오늘은 결혼 기념일이다. 오후에 남편으로부터 야근을 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그만 푸학 웃었다. 언제부터 이 남자가 야근을 전화로 알렸단 말인가. 은근히 귀엽다.      

“아침에 내가 보낸 메시지에 대해 생각 좀 해봤어?”

남편은 “아니, 사람이 뻔뻔하게 살아야지.”

나는 “오케! 잘 알아들었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톡이 온다.

“결혼기념일인데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없어.”

“생각해봐”

“그럼... 목걸이?‘

곧이어 캡쳐한 카드명세서가 날아온다.

“응, 나 목걸이 안살께”ㅋㅋㅋㅋㅋ


우리가족은 그날 밤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인정하고 솔직히 말하는 걸 아이들이 아빠의 언어로 습득하면 곤란하다. 나는 오늘도 남편의 언어에 웃으며 과제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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